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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98001 건축과 환경 1998-01 일산22412주택    1998

세상으로 열려있는 집 - 건축가 권문성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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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각각의 건물을 설계하는 일은 그 건물을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보고 이에 맞는 질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작업하며 생각하고 있는 몇가지 건축의 질서를 얘기해 보려한다. 어떠한 질서도 모든 건물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질서로 건축을 보면서 건축의 본질에 조금씩 더 가깝게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내부공간, 외부공간의 중첩, 순환

집안의 세상과 집밖의 세상은 다르다. 서로 다른 세상은 얇은 유리창, 또는 굳센 벽으로 구분된다. 집밖의 세상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때론 따뜻한 햇빛이 내리쪼인다. 또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며, 서리발이 올라오고 파란하늘이 보인다. 나무가 자라고 흙 위로 풀이 덮히고 꽃이 피며 새가 운다.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천둥과 번개의 세상이기도 하고 어둠속에 달과 별이 빛나는 곳이다.

우리는 이러한 밖의 세상과 구분하여 안의 세상인 집을 짓는다. 집안은 보호되고 평화로우며 매일매일 우리가 살기 적당한 환경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안에서 산다.

안의 세상과 밖의 세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싶다. 안의 세상에서 삶의 활기가 넘치는 밖의 세상 사는 맛을 즐기고 또한 밖의 세상에 안의 세상과 같은 편안함을 주고싶다. 이처럼 두가지가 같이 존재하는 공간이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전통주택의 안뜰에 서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방, 창호지문, 대청마루, 툇마루와 이어지는 마루끝 부분, 댓돌윗 부분, 봉당, 지붕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까지의 처마밑 공간, 마당. 안으로 향하여, 밖으로 향하여 공간을 아주 세밀하게 구분해서 쓰고 있다. 외국인들의 입에는 꼭같이 밋밋한 냉면맛을 우리는 구분해 내듯이 안과 밖을 여러 단계로 구분하여 즐기는 일은 우리에게 아주 평범한 것이다.

우리의 전통주택은 몇 개의 채로 이루어져 있다. 채가 연속되면서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중첩되며 안팍의 경계가 느슨한 공간이 연결되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혹은 하나의 채에서도 안마당을 에워싸고 중첩된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어져 중첩된 공간을 따라 시야도 열린다. 즉 안과 밖의 공간이 서로 에워싸거나 번갈아 반복된다. 이러한 연결과 중첩은 하나만이 아니다. 여러개가 평행하게, 또는 직각으로 교차하며 동시에 존재한다. 전통주택 공간들은 하나 하나의 크기는 작지만 전체의 크기가 절대로 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일산22412주택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몇번이고 교차하여 연속되도록 만들었다. 중앙의 마당은 건물을 관통하여 주택 주위의 크고 작은 몇 개의 외부공간과 이어진다. 1층을 살펴보면, 서쪽에서 건물을 파고 들어온 작은 안뜰은 목재커튼월을 통과하여 외부로 열려진 식당으로, 집안에서 가장 많이 열린 부분이라 할 수 있는 계단실로, 또다시 목재커튼월을 지나 거실앞 목재 데크로, 할머니방으로 이어지는 실내복도로, 뒷뜰의 정원으로, 주차장을 구획하는 반정도 열려진 가벽으로, 다시 외부로 계속 연결된다. 2층을 살펴보면 서쪽의 안뜰에서 방사이의 데크로, 계단실로, 마당상부를 지나며 사랑방으로 이어지는 브리지로, 정자로 오르는 계단을 통하여 하늘로 벋어간다. 1층과 2층 각각의 공간들은 마당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교차하여 사선 방향으로 이어진다. 외부 / 내부 / 외부 / 내부 / 외부로 느슨하게 연이어 연결되는 공간은 집전체의 가장 중요한 질서를 만든다. 중요한 외부공간에는 외부임이 잘 느껴지는 나무를 심어 녹색의 흐름이 건물을 관통하고 있음을 쉽게 알수 있게한다. 이러한 흐름에 평행하여 또 직각방향으로 유사하게 내외부가 중첩된 공간이 흐른다. 이러한 공간의 흐름은 'ㅁ'자모양으로 순환된 흐름을 형성하며 계속 이어진다. 이는 1층과 2층에서 같은 위치에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중복되어 나타나므로 수많은 흐름의 조합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중첩되고 순환하고 있는 공간을 따라가면서 느낄 수 있는 공간경험의 조합은 무수히 많다고 하겠다.

길, 집 속의 길

길이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을 말한다. 길에는 아이들이 놀고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며, 공동의 행사가 벌어지는 곳으로, 걷고 싶은 길만이 길다운 길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건물은 길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모든 건물의 공간은 길이라 부르는 공간에 연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몇 개의 중요한 요소를 묶어주는 공용의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이 길의 속성을 지닌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개의 건물이 하나의 단지처럼 묶여지는 경우는 대부분 길을 부지안에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건물의 질서가 만들어진다.

'해남군 도서관 및 문화예술회관'은 해남군 기존의 시가지에 가장 큰 규모로 새롭게 제안되는 문화건물군이다. 이건물군의 질서는 많은 사람들의 알기쉽고 편안한 흐름을 형성하며 만들어진다. 문화가로라고 이름 지은 길로서 부지 중심을 열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한다. 문화가로의 방향은 시가지 중심을 향한 남쪽의 광장으로 부터 시작되고 시가지 서북쪽의 신개발 주거단지를 향하도록 한다. 길게 곡선으로 휘어진 길은 단순하게 직선으로 열린 길보다 눈에 보이는 길의 끝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들도록 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다. 길이지만 시각적으로 닫혀져 포근하게 감싸인 느낌이 들도록 한다. 길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들어서며, 많은 사람이 모이는 광장과 휴게시설을 덧붙인다. 길에 어울리는 성격의 기능인 전시실, 카페테리아, 문화장터등을 집중적으로 길 옆에 늘어 놓는다. 사람들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건물내부로 연결하여 건물내부에서의 흐름도 잘 이어진 길과 같도록 하였다. 건물을 이용하는 각각의 사람들은 부지에 들어서면서 부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때까지 문화가로와 집 속을 길을 통하여 가게된다. 자연스럽게 난 길이 필요이상으로 구부러지거나 되돌아가는 일이 없듯이 집 속의 길도 그와 같이 만들고 각 기능공간들이 길의 질서에 맞게 자유로운 모습으로 붙도록 한다. 형태와 동선은 분명하고 자유롭다. 이질적인 모습의 기능공간들은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된다. 복잡한 기능을 수용한 건물에 곧바른 복도로서 내부 질서를 만든 경우 상대적으로 훨씬 더 복잡하고 사람들의 동선이 왜곡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그렇듯이 주택은 몇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방들의 집합이라고도 생각된다. 하지만 전통주택을 보면 방이라는 기능공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청마루, 툇마루, 마당, 담장과 집사이로 난 길과 같이 이동하는 공간까지 포함되어야 집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밖의 세상과 집안의 세상을 나눌수 있듯이 또한 집안 세상도 방으로 닫혀진 공간과 이를 이어주는 풍성한 이야기거리가 달려있는 방 밖의 공간으로 나눌수 있을 것이다. 기분좋은 거리를 걷듯이 집안에서도 걸어 다닐수 있는 길을 만든다.

일산22412주택의 길은 보행자전용도로로 난 대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대지 건너편에 지어질 집과 함께 베니스의 좁고 높은 골목길 분위기를 생각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조적조로 구획된 부분으로 들어가며 이곳이 주로 주택내부의 통로로 이용되는 부분으로 거실과 식당, 주방, 아이방으로 이어지며 벽에 매달려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2층 복도는 갤러리와 같은 분위기로 손님방, 아이방이 연결되며 가장 끝부분에 부부전용공간이 연결된다. 길게 이어지는 복도는 반듯하고 평범한 모습이지만 방과 외부공간이 번갈아 달려있어 걸어가면 다양한 느낌의 공간이 연속됨을 알게 된다. 조적조로 싸인 부분을 평범한 집 속의 길이라고 할수 있다면 건물내부와 외부가 중첩되고 순환되는 공간은 좀더 다양한 느낌이 살아 있는 집 속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당을 감싸며 도는 길은 옥상의 정자로 올라가 길의 정점에 서서 집의 질서를 내려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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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인가, 좋은 건축을 하기위해 어떤 건축가가 필요한가를 생각한다.

전문가로서의 건축가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건축가는 이세상을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할 책임이 있고 이를 위해서 비타협적으로 올바른 건축을 행할 권리가 있다. 이를 통제하는 어떤 것과도 투쟁하여 실현해야하며, 때로는 철저히 무시해야한다. 즉 당연히 오만하다고 여겨질만큼의 자신감을 가져야만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행하여야 한다.

작업을 하면 수많은 제약과 조건을 만나게 된다. 그 모든 제약과 조건조차도 좋은 건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무시하고 싶다. 어떤 건축의 규범이나 기준은 모두 그것이 만들어진 때의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과연 무엇을 얻기위한 기준들인가. 그러한 기준으로 건물이 만들어 진다면 좋은 건축환경이 되는가. 건축법을 비롯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겨지는 수 많은 건축과 관련된 생각들은 모두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철저히 검증하여 다시 적용시켜야 할 것이다. 내가 갖고있는 건축적인 기준은 무엇인가. 본래의 가치로 돌아가 다시 생각한다. 이미 이름 붙어져 고정되어 있는 것까지도 다시 정의한다. 철저히 그리고 새롭게 가치를 부여한다.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 작업한다. 그렇게 하면 나자신만의 좋은 건축이 만들어 질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모든 가치는 인정하되 결과물로서의 과거는 참고할 수 없다. 아직도 나의 건축을 찾아내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련된 건축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으려 한다. 현재의 세련되게 느껴짐이란 타협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혹은 눈에 익숙한 것들의 변형된 복사품이 아닌가를 의심하려 한다.

도시 안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마치 질서를 존중하고 긴장을 유지하면서 하나 하나 돌을 놓아가는 바둑과 같다고 생각된다. 이 도시에 질서와 긴장을 존중하며 집하나를 더한다. 땅이 갖고 있는 질서와 프로그램을 창조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건축으로 답한다.


일산22412주택 설계소묘

일산에서 두 번째로 완성한 단독주택이다. 여러부분에서 첫 번째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정발산 남쪽기슭 경사지에 위치한 평화로운 단독주택단지에서, 남쪽으로 넓은 도로와 공공의 녹지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대지이다. 외부의 여유있는 녹지는 집안 가운데 마당으로 연속되어 들어오고 대청마루와 같은 거실로 연결된다. 또한 거실은 마당으로, 마당은 외부녹지로 확장된다. 마당은 ‘ㄱ’자형의 본건물과 별채가 엮여져 ‘ㄷ’자 모양으로 감싸진다. 서쪽으로 건물을 파고 들어온 작은 안뜰과 주차장에 연결된 뒷뜰, 현관앞의 작은 마당은 집가운데 마당, 건물밖 남쪽의 녹지공간과 함께 외부공간 끼리 건물을 관통하여 교류한다. 마당마다 심어진 나무도 건물을 가로질러 마주보며 녹색의 축으로 공간의 질서를 보여준다.
외부공간을 입체적으로 가로지르는 2층 브리지는 본채와 사랑방을 연결시키고, 최상층의 정자로 이어진다. 브리지에는 감나무가 기대있고, 안마당이 내려다 보이며, 지붕에 둘러싸여있는 하늘과 맞닿아있다.

주인부부에게 침실에서 눈을 뜨면 마당을 건너 브리지와 바깥벽을 통해보이는 좋은 풍경을 선사하고 싶었다. 한참 커가는 딸아이가 언제든지 거침없이 마당으로 뛰어나가 놀고 또 할머니방으로 건너갈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외관은 협소한 대지끼리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인접한 집을 향해 배경이 되는 벽으로 느껴지도록 하였고, 바람에 날리는 책갈피 같은 모양의 지붕들은 하나하나 그아래에 지붕모양 그대로의 형태를 갖춘 독립된 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좋은 공간과 건축을 이해하는 건축주의 의지에 힘을 얻어 집이 완성되었다.


대담 - 건축가 권문성의 일산22412주택

권문성 / 아뜰리에17 대표)
이재익 / 수원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이: 일산 신도시 정발산의 남쪽 기슭, 전용주거지역내에 얼마 전 또 하나의 단독주택이 새로이 들어섰습니다. 주변에 이미 지어진 100여 채에 이르는 단독주택들과 견주어 볼 때,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색다른 외부 모습이 지나는 행인들의 시선을 끌뿐만 아니라 건축인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오늘 대담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먼저 "일산22412주택"으로 이름 붙여진 이 건물의 설계와 시공기간을 언급함으로써 역사의 시간축상에서 위상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권: 건축주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여름, 1996년 8월 정도였습니다. 올해초에 착공하는 것으로 하여 다섯달 정도 설계작업을 하였습니다. 1997년 1월 중순경 착공을 하고 최근 1997년 11월 말경에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공사기간중에도 현장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설계를 조정하였으므로 저는 공사종료시까지를 설계기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정도 현장에 나가 실제 스케일의 건물 속에서 설계작업을 계속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건축행위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창조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지와도 같은 빈 대지(垈地)위에 그간의 여러 작업을 거처서 하나의 건축조형물이 이제 그 결과물로서 우뚝 서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를 결정하는 건축설계작업에는 순수조형예술과는 달리 다양한 자연적 그리고 인문, 사회적 조건들이 밀접하게 결부되어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이 주택의 설계조건 중에서 먼저 건축주가 제시했던 사항들을 말해 주십시오.

권: 건축주가 제시한 조건은 가족구성원과 이에 필요한 방의 개수, 대략적인 연면적, 몇층으로 할 것인가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맞벌이 부부입니다. 아이는 설계도중 태어나고 지금은 첫돐이 지났습니다. 필요한 방으로는 거실, 부엌, 식당, 아이방 둘, 조금 독립적인 위치의 어머니방, 손님방, 주인침실, 서재, 지하의 작업실이었습니다. 맞벌이 부부이므로 주방은 크지 않고 가능한 좋은 설비로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지하층은 작업에 필요한 만큼으로 작게 개발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처음 약 70평 정도로 규모를 생각했는데 결과는 75평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한된 크기의 대지이지만 가능한한 넓은마당을 갖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문의 위치는 북쪽의 공용주차장 방향이 아니고 서쪽의 보행자전용도로 쪽을 원했습니다.

이: 어떤 대지이건 간에 그 정해진 위치에 의해서 자연기후조건이나 주변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설계대지 고유의 조건들이 있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설계시 어떤 대지조건들이 고려되었습니까?

권: 대지에 붙어서 남쪽에 15m 폭의 녹지인 공공공지, 40m 폭의 도로, 길건너로도 15m 폭의 공공공지 그리고 15층 아파트가 있습니다. 자동차 소음도 있고 좋은 경관이라 할 수 없는 아파트는 피할 대상이고, 정남향이라는 점, 녹지에 붙어있다는 점, 어찌되었던 간에 약80m 정도의 탁 트인 전망을 갖는다는 점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붙어있는 녹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대지 서편은 보행자 전용도로가 있고, 동측과 북측으로는 또다른 단독주택용 필지가 있습니다. 북측의 공용주차장을 향하여 대지가 부분적으로 길게 돌출한 모습입니다. 대지 고저차는 약 60cm 정도로 남사면입니다.

이: 일산22412주택이 지어진 지역은 별도로 설정된 도시설계지침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설계의 형태결정과 연관된 중요한 법적 제한사항들은 무엇이었습니까?

권: 주택에서 중요한 요소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담장은 설치가 금지되어있습니다. 또한 30% - 70%의 정해진 경사지붕을 갖도록 되어있습니다. 주차진입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도 형태제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번 대담을 준비하면서 건축주 이재택씨와 먼저 면담을 하였습니다. 건축가 권문성씨와의 만남은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인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산22393주택"이라는 전 작품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재택씨는 지금의 대지에 다른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기본설계가 끝난 상황에서 일산22393주택을 접하였고 결국 기존의 완성된 계획안을 포기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미지(未知)의 건축가에게 주택설계를 맡기게 되지요. 추가되는 비용 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미련을 상상해 볼 때 결코 쉽지 않았을 대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급격한 전환을 하게된 원인을 캐보고 싶었습니다. 22393주택의 독특한 외관형태를 염두에 두고 어떤 점에서 가장 호감을 갖게 되었는 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재택씨가 진술한 그 주택에 대해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계획된 시선축상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형태의 공간들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그 투명성으로 인한 시원한 공간감이었습니다. 더욱이 새로 짓게되는 자신의 주택의 매스형태는 22393주택과 차별화해 달라는 주문도 하였다고 합니다. 건축주의 요구는 이제 가시적인 건축물의 모양새뿐만 아니라 공간구성의 질적인 면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설계단계에서부터 건물의 완공에 이르기까지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는 어떠하였는 지를 설명해 주십시오.

권: 작년에 완성한 일산22393주택을 통하여 제가 만드는 공간에 대한 기대로 시작된 만남이었습니다. 처음 계획안을 제시할 때 전면의 녹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어머니방, 사랑방, 옥상의 정자를 별채로 하는 아이디어를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그 이후 완공할 때까지 저를 신뢰하고 제가 설계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였습니다. 공사에 대한 이해도 높아서 오히려 제가 망설이는 부분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건축가는 특정한 건축주제에 대하여 나름대로 개인의 건축철학을 구축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우에는 단독주택에 대한 건축가 권문성씨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권: 저는 요즈음 지어지는 넓은 주택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우리의 전통주택이 더 많은 여유와 시원한 공간을 갖고 있다고 느껴지는 가를 알고 싶었습니다. 또한 어릴적 한옥에 살며 느꼈던 익숙한 공간이 이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산22393주택을 설계하면서 그 주택의 내부와 외부가 연속하여 중첩되는 공간질서가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주택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것이라는 알았습니다. 이번 주택은 그러한 공간질서에 주목하였으며 중첩되는 여러개의 흐름을 만들며 또한 순환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순환동선을 따라 집안팍을 걸어다니며 공간을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중첩된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집 속의 길'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며 최근에 완성한 일산의 다세대주택이 있는데 이경우도 마찬가지로 길이라고 정의하고 통로만 만들어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걸어가면서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제시하여 보여주고 시선과 발걸음을 동시에 잡아끌어당기는 것이 있어야만 걷고 싶은 길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크지않은 집속에서 걷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가 된다는 것은 집 자체가 매우 크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저는 동선의 실제적인 길이를 연장하기 위하여 대지의 가장 긴 부분이 주된 통로가 되고 또한 시선을 움직이는 방향에 맞게 열어주어 그 대지에서 느낄수 있는 최대한의 깊이를 줄 수 있도록 합니다. 역시 시선의 깊이도 최대가 되겠지요.

이: 일산 22412주택 건축 자체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 건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도면과 사진자료 그리고 간략한 건축개요내용에 의해서 이 건물의 물리적이고 외형적인 상태가 어느 정도 파악될 수 있고 현장답사를 통해 3차원적인 공간감과 재료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질감 등이 느껴질 때 비로서 한 건축물에 대한 총체적이고 진정한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설계되어 종이위에 존재하는 건축안(建築案)이 대지위에 실제의 건축물(建築物)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측면은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자임에 틀림없습니다만은 일반적으로 그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거나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건물이 완성되는데 소요된 건축비와 또 전체예산이 어떻게 배분되어 사용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지요?

권: 평당공사비는 약 430만원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은 바닥면적에서 제외되는 부분이 상당하므로 다른 단독주택의 쓰임새를 고려하여 보면 평당공사비로 약400만원 이하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이제 건축가의 설계방법론에 대하여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부여받은 대지는 물론 빈 터의 상태이었을텐데, 그 대지를 어떻게 해석하였으며 형태를 빚어내는 조형작업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였습니까?

권: 물론 집이 지어질 땅은 비어있었지만 주위의 환경은 이집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남쪽의 녹지를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습니다. 거실-마당-녹지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공간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거실은 마당으로, 마당은 녹지와 외부세상으로 확장되게 됩니다. 반대로 바깥세상은 마당으로 또 거실로 수렴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거실에서, 마당을 지나 커다란 그림틀을 통하여 바깥세상을 볼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하나의 중요한 내부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침실은 거실 윗 부분에 같은 흐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침대에서 눈을 뜨면 가장 그럴듯한 경관을 볼수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건물의 북측과 동측에는 이웃집이 들어설 것이고 시선의 프라이버시가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되어 두방향으로는 개구부를 절제하고 대부분 막혀진 벽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마당을 ㄱ자모양으로 둘러싸도록 형태를 만들고 마당 동쪽구석에는 별채를 만들어 전체적으로는 ㄷ자모양으로 건물이 마당을 에워싸도록 하였습니다. 남쪽 녹지와 만나는 부분은 커다란 개구부를 갖는 벽을 만들어 마당을 전통주택의 안마당과 같은 느낌이 들고, 마당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지붕선과 건물끝선에 갇혀있는 모습으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외부는 전체적으로 밋밋한 느낌이 들었으면 하였습니다. 집 곳곳에 있는 커다란 개구부를 통해 보이는 집안은 뚜껑열린 보석상자와 같이 화려하게 느껴지도록 하였습니다. 남북방향으로 두개의 조적벽을 집안에 끼워넣었습니다. 방을 집안에서의 안이라 할수 있다면 조적벽 사이의 공간은 집안에서의 밖과 같은 성격을 갖는 현관, 홀, 복도,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적인 공간을 이어주는 부분은 외부의 질서를 담고있다는 것을 재료와 형태로서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밖에 바람에 날리는 책장과 같이 보이는 지붕은 하나의 지붕마다 하나의 독립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건축물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주택은 작은 규모에 속하지만 권문성씨의 주택작품에는 그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다양한 재료들이 구사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축재료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권: 저는 내외부 공간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건축재료의 사용도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싶습니다. 벽돌벽을 내외부 공간을 가로질러 사용한 것과 거실앞 데크와 뒷마당의 툇마루를 실내복도까지 그대로 연속시킨 것, 외부의 백색 드라이빗의 재료는 실내의 석고보드위의 수성페인트 뿜칠된 부분과 하나의 목소리로 연속된다고 생각하며, 지붕의 목구조가 실내외를 관통하도록 처리한 것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하나 하나마다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작업하다보니 전체적으로 재료의 가짓수가 넘치는 느낌이 있는 점은 제게 남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권문성씨는 설계와 감리를 모두 맡아서 계획단계에서부터 건물의 공사와 완공에 이르기까지 관여하였습니다. 초기의 설계안과 완성된 건물을 비교하여 볼 때 차이점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우선 2개층 높이의 좁은 식당공간이 단층 높이의 적절한 공간비례로 바뀐 점과 남측 입면을 형성하는 직사각형의 외벽 겸 가벽의 입면에 조적벽의 돌출을 추가하여 내부공간구조를 외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단조로운 입면형태에 생기를 더해준 점은 긍정적인 설계변경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계획되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던 혹은 안했던 부분이나 공사진행중 발생한 설계변경내용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권: 저는 착공후의 건축가의 작업이 단순히 도면위에 표현된 그림을 정확하게 실현하는 가를 점검하는 일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주택에서는 5cm나 10cm정도 차이나는 공간, 5mm정도 차이나는 디테일이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느낍니다. 따라서 현장에서 1대1 스케일로 건물을 느끼며 설계안을 지속적으로 보정해나가는 작업이 설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이유로 주택의 최초 설계안은 결과와 달라질 수 밖에 없으며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몇가지 문제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으로는 서쪽 안뜰 밖에 설치하기로 한 목재루버, 남쪽의 창밖에 설치하기로한 알미늄타공판, 마당상부의 전동식 차일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보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두 설치가 완료되면 좀더 짜임새 있고 편안한 건물로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창호공사도 당초 계획보다 기밀성이 떨어지는 제품이어서 차후에 보완될 것입니다.

이: 이 주택의 북서측에 위치한 벽돌조의 만곡된 벽체는 건물로의 접근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접근시 공간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대문을 지나 주출입구로 이동할 때 진입공간은 조적벽체에 의하여 원심(遠心)적인 방향으로 조여지고 있는데 이 부분의 처리가 명쾌하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외벽에 대하여 직각방향이 아니고 사선방향으로 낸 개구부는 초기안 상에서는 벽돌과 차별화된 재료로 계획되었으나 시공은 벽체의 재료와 동일하게 처리되어 아쉬운 여운을 남기는군요. 그러나 주부 혹은 가족이 부엌에서 일하면서 현관 앞의 외부공간과 시각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한 건축가의 공간구성 기법은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로 지적하고 싶습니다.

주택의 지붕문제입니다. 집 전체를 덮는 하나의 커다란 형태로 나타나거나 혹은 매스별로 분할된 지붕의 구성이 일반적이나 이 작품에서는 각 방이나 기능공간에 대응하는 보다 세분된 지붕형태를 부여하여 각 공간의 기능적인 독자성을 내·외부로 표현한 점은 신선한 시도로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2층의 주인침실은 수납공간, 취침영역 그리고 욕실공간이 서로 통하면서도 상이한 천장형태로 인하여 각각 독자성을 갖으며 이러한 내부공간의 구조는 외부에서 서로 엇갈린 지붕의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건축에 나타나는 지붕형태의 미가 현대의 건축가들에 의해 보다 창조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건축가가 본인의 작품인 일산22412주택을 스스로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 너무 많은 생각을 직설적으로 담으려고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간의 질서에만 집중하다보니 형태가 부분적으로 산만하게 처리된 부분이 보여 아쉽습니다. 중첩되고 또 중첩된 공간질서가 순환되는 이 집은 수많은 공간체험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것들을 하나 하나 발견하고 자신만의 소중한 장면, 공간들로서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공간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 계절의 색깔이 어떻게 집안에 스며드는가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배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산의 전용주거지역의 필지분할 형태는 공동의 마당개념을 도입하여 이웃공동체안의 교류를 위한 환경의 틀을 제공하였으나 이 대상주택의 진출입은 서측의 보행자도로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여 이웃과의 자연스런 만남이 구조적으로 배제된 상황입니다. 주택이 한 가정의 안식처로서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마을공동체의 한 구성단위로서 갖추어야 할 사회적 역할을 건축적인 수단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이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재익

1960 서울생
1983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1988 독일 도르트문트 건축학부 디플롬 본과정 수학
1990 독일 하노버대학 건축학부 디플롬학위 취득
1990 독일 건축사 취득
1995 독일 하노버대학 건축학부 박사학위 취득
1995-96 서울건축 근무
1996-현재 수원대학교 건축공학과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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