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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1003 건축사 2001-03 현암사 비평    2001

혼재와 중첩: 현암사와 은유적 맥락주의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은유적 맥락성

현암사는 헌 건물이다. 그러나 새 건물이다. 그러나 사실은 헌 건물이다. 현암사는 1970년대 양옥을 리노베이션 한 건물이니 헌 건물이다. 그런데 옛날 건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새 건물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옛날 건물이 어떠했으리라는 단서를 간접 화법으로 혹은 은유법으로 암시하고 있으니 다시 헌 건물이라 할 수 있다.

현암사의 리노베이션은 은유적이다. 현암사에는 옛날 건물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옛날 집의 흔적은 공간 골격에만 남아있다. 어차피 집을 완전히 다 허물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보니 방들로 구성되는 전체 골격만은 남겨져 있다. 그러나 외관에서 옛날 집의 모습을 얘기해주는 시각 요소는 남아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리노베이션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적어도 리노베이션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정의했을 때 그러하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관점에서 리노베이션이란 옛날 집이 갖고 있는 조형적 특징을 어느 정도 남겨 놓은 상태에서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음 단계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옛날 집의 조형적 특징이 밖으로 드러나야 하며 건축가는 그것을 단서로 삼아 자신의 디자인을 풀어갔다는 내용을 보여주어야 한다. 옛날 집의 특징을 이어받거나, 패러디하거나, 대비적으로 반전시키거나 하는 등의 내용을 의미한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현암사는 리노베이션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리노베이션의 출발점이 되는 조형 특징의 기준을 옛날 집에 한정시키는 경우 그러하다. 그럼에도 현암사는 여전히 옛날 집의 모습이 어떠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현암사에서 옛날 이야기는 맥락주의라는 방식을 통해서 전개된다. 옛날 집 그 자체가 아닌 주변 환경의 조형적 특징으로부터 디자인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옛 것의 존재를 드러내는 정도는 은유적이다. 특정 요소의 직접 차용보다는 은근한 분위기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은유적 맥락주의이다.

현암사는 전형적인 맥락주의 건물이다. 간선도로에서 들어오면서 마주치는 첫 인상은 새 건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옛날 건물에 봄맞이 대청소를 한 정도, 혹은 새 단장을 입힌 정도로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새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많지 않다. 건물의 외관적 특징을 결정짓는 대표적 요소인 재료, 색채, 형태 등에 있어서 주변 조형 환경과의 연속성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 눈에 맥락주의적 연속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암사의 맥락주의가 갖는 특징은 은유적 연속성이다. 물론 현암사에서도 물리적 요소를 이용하여 주변 환경과의 직접적 유사성이 표현되어 있다. 흔히 얘기하는 맥락주의의 표준적 내용에 해당된다. 그러나 현암사의 진수는 이것이 아니다. 현암사의 맥락적 연속성은 은유적 분위기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을 표현하는 매개는 공간적 리듬감, 수평-수직 구도, 디테일 등 세 가지이다.

공간적 리듬감과 수평-수직 구도는 무형의 분위기인 점에서 은유적이다. 디테일은 일차적 시각 요소 속에 은밀히 술어있기 때문에 은유적이 다. 현암사의 은유적 맥락성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맥락주의에 해당된다 여기에 더하여 직접적 맥락성을 보강하는 역할도 갖는다. 직접적 맥락성과은유적 맥락성이 합쳐지면서 현암사의 맥락주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갖는다. 명쾌함과 부드러움, 엄밀함과 친근함, 반들할과 자잘할 등의 양면적 분위기가 그러한 독특함의 내용이다.

공간적 리듬감

현암사의 공간은 리드미컬하다. 리듬감은 이완과 긴장의 연속과 반복에서 나온다. 편안한 세 개의 직육면체 매스를 보면서 이완감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동굴 같은 출입구로 접어들면서 긴장감이 시작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긴장감은 배가된다 좁은 협곡 사이에 끼어있는 듯한 긴장감 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한줄기 숨통은 트여있다. 유리의 투명함을 통해 비치는 밝은 빛이 그것이다. 하늘빛과 햇빛이 들어오고 그 및으로 넓은 실내 광장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이 조차도 다시 긴장감으로 바뀐다. 빛을 조이면서 잠시 한숨을 돌려보지 만 이번에는 극도의 분산적 긴장감이 나타난다. 협곡의 양쪽 유리 면을 오가며 빛은 난삽한 교차를 반복한다. 반사는 반사를 낳아 분산된다. 현란함까지 느껴진다. 자연 재료인 나무와 벽돌이 주재료로 사용되면서 만들어내는 안정감과 대비되는 역동적 불안감이 넘쳐난다. 이완과 긴장은 잘 짜여진 반복 작용에서 일탈하여 교차하며 혼재하고 있다.

실내에 들어와서도 이완과 긴장의 교차적 혼재는 반복된다 무엇보다도 천장까지 뻥 뚫린 큰 진공이 비워져있다. 출입구로 진입하면서 겪었던 극도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탁 풀어진다. 그러나 각 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계단은 긴 거리를 쉬지 않고 오른다. 혹은 꺾어지며 밑으로 떨어진다 보이지 않는 좁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가기도 한다.

계단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공간의 분절 자체가 그러하다. 공간은 크게, 그리고 다시 작게 나누어져 있다. 고층 건물의 장쾌함에서 오브제의 아기자기함까지 스케일이 교차하고 있다. 브리지를 건너고 골목길을 지나 각 방으로 흩어진다. 공간이 분절될 때마다 3-4단씩의 계단 변화가 따른다. 10평 자리 큰방이 단독으로 있다가 0.3평 자리 작은 방 세 개가 급하게 반복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공간적 리듬감은 서울 골목길의 공간 구조를 은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서울의 골목길은 넓어졌다 좁아지고 막혔다 꺾이는 리듬감으로 가득 차 있다. 능선 위의 골목길은 경사를 타고 앉아 상승과 하강의 리듬감까지 추가로 갖는다. 그 리듬 또한 급하다가 늘어지는 등 다양한 변화의 연속이다. 이 모든 것들은 서울이라는 주변 환경이 갖는 물리적 맥락적 특성을 이룬다 현암사의 공간적 리듬감 은 이러한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평-수직 구도

현암사는 수평적이다. 한 층의 크기와 연건평을 비교해볼 때 수평 비례를 갖는다. 건물 규모도 크지 않다 수직 구도가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데 수직적 느낌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혼재는 매우 의도적이다. 수평 요소와 수직 요소가 단계를 달리하며 교차하고 얽혀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는 건물 전체의 수평 비례가 결정된다. 이것은 곧 수직 비례로 바뀐다. 수평 방향으로 넓적한 매스를 굳이 셋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나누어진 각 매스는 수직 비례를 갖는다. 건물은 수직 비례를 갖는 매스 세 개가 병렬한 형국으로 구성된다. 수직성이 건물 전체의 느낌을 주도한다. 그러나 본래의 수평성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수평성과 수직성의 혼재이다.

창 처리는 외관에서의 이러한 혼재를 돕는다. 세 매스 가운데 새로 덧붙여진 가장 오른족의 매스에서는 수평창만이 쓰이고 있다. 3층에 걸쳐 수평선 세 겹이 반복되면서 강한 수평성이 형성되고 있다. 창에 덧붙여진 차양은 수평성을 보강한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마지막 층의 차양은 지붕처럼 보이기도 한다. 창이 만들어내는 수평성은 매스 전체의 수직성과 혼재된다.

중간 매스에서의 혼재는 더 독특하다. 하층부에는 수평 방향의 창이 쓰이고 있다. 하층부의 접지적 특성과 합쳐지면서 수평성이 강조되고 있다. 반면에 상층부에는 수직 방향의 창이 쓰이고 있다. 상층부의 앙천적 특징과 합쳐지면서 수직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직 방향의 창 한 가운데에서 발코니가 공중에 길게 돌출하고 있다. 이 발코니는 물리적으로는 수평선을 만든다. 그러나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발코니는 심리적으로는 수직적으로 읽힌다 묘한 전환이다. 수평-수직의 혼재는 더욱 복합적으로 얽힌다.

실내에서도 혼재는 계속된다. 출입구를 면한한 쪽 면은 전면 유리로 처리되어 있다. 이 유리면은 수직 방향의 멀리온으로 분할되어 있다. 분할 방향 자체가 일단 수직성을 만들어 놓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분할은 고층 오피스 건물에서 쓰이는 전형적 처리이다 고층 오피스에 대한 강한 연상 작용을 갖는다 모습 자체가 갖는 형태상의 수직성에 연상 작용을 통한 수직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수직성은 강조된다. 작은 공간에서는 느끼기 힘든 수직성이다.

멀리언을 이용한 수직 분할 모티브는 복도난간과 붙박이 책꽂이 등 실내의 다른 곳에서 반복된다. 이 사이를 수평선이 가르며 지나간다 전면 유리로 처리된 면을 접한 옆면에는 수평 방향의 창이 뚫려있다. 수직 벽으로 구획된 복도 난간에는 수평선이 한 줄 그어져 있다. 굵은 줄 한 줄이 긋는 일획은 강한 수평선을 만들어낸다. 반면 계단 난간은 여러 겹의 얇은 수평선으로 구성된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이러한 혼재 역시 주변환경에 대한 맥락적 해석의 의도를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의 맥락적 해석이란 현암사가 놓인 주변이라는 미시적 환경 단위일 수도 있고 서울이라는 거시적 환경 단위일 수도 있다. 현암사 주변의 아현동을 보자. 이 일대 골목은 아직 1980년대 이전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1980년대 이후의 변화가 섞여 나타나고 있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혼재는 이런 변화의 산물로 아현동 골목 속에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까지 형성된 조형 환경들은 수평선으로 구성된다. 반면 이후 형성된 조형 환경들은 수직선으로 구성된다.

이런 혼재 현상은 넓게 보면 서울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다시 한국 현대사의 진행 과정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수평선으로 대표되는 전통 문명이 수직선으로 대표되는 산업 문명으로 바뀌어 가는 중첩 현상이 그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대화는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중첩보다는 파괴 혹은 급속한 대체를 그 특징으로 갖는다. 파괴나 급속한 대체는 흔히 한국 현대사의 부정적 현상으로 얘기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중첩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국 현대사를 대표한다기보다는 부정적 현상에1 대한 대안의 의미를 갖는 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현동 골목은 혼란스럽고 지저분하다. 아직옛날 골격이 유지되는 가운데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다. 혼잡과 불편함은 가중된다. 급격한 재개발에 익숙해진 눈에는 아현동 골목 속은 재래 골격의 후진성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아현동 골목의 혼재는 한국 현대사의 부정적 현상에 대한 대안이라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이것은 기능이나 효율과는 다른 문제이다. 아현동골목의 혼재는 곧 중첩이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몇 십 년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중첩의 기록이자 물리적 증거이다. 현암사의 수평-수직 혼재는 이러한 기록과 증거에 대한 맥락적 해석이다.

디테일과 맥락적 단서

현암사는 맥락주의 건물이다. 맥락주의는 맥락과의 연속성을 기본 입장으로 갖는다. 이때 연속의 기준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맥락 속에 형성된 물리적 특징에서부터 정신적 상징성에 이르기까지 건축적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모두이다 현암사를 둘러싼 맥락은 수평성과 수직성이 혼재된 특징을 갖는다. 이에 대한 현암사의 건축적 해석은 두 단계로 일어난다. 첫 번째 단계는 그러한 혼재를 중첩으로 읽어내는 해석이다. 앞에서 살펴본 수평-수직 구도의 주제가 그 내용이다.

두 번째 단계는 혼재 가운데에서도 특히 수평선의 강조를 통해 맥락적 상황에 대한 시대적 해석을 내리고있다 수평선의 강조는 디테일을 통해 읽어낼수 있다 현암사에는 세 가지의 대표적 디테일이 쓰이고 있다. 첫 번째는 건물 몸통의 모서리를 끼고 두 면에 걸쳐 나있는 창이다. 이 때 차양이 덧붙여지면서 수평선이 형성된다. 두 번에는 판재의 단면이 수평 방향으로 노출되면서 선형으로 읽히도록 한 처리이다. 이 선형은 강한 일획의 수평선이 된다. 앞의 첫 번째 수평창의 차양 역시 이러한 처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교차점의 디테일을 가능한 한 없앤 처리이다. 일단 부재 자체를 잔손질이 최소화된 가장 단순한 상태로 쓰고 있다. 목재의 경우 단조로운 각목이 반복되고 있다. 벽돌의 경우에도 내어쌓기나 들여쌓기 등의 단쌓기가 억제되고 있다. 부재와 부재가 만날 때도 교차점의 디테일이 최소화되어 있다. 단순한 잇기나 덧대기에 가깝다. 있다고 해도 약간의 관입 정도가 고작이다.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한 몇 개의 가구 역시 잔손질이 최소화되어 있다. 단순하지만 그 속 에는 각목의 투박함이라는 나름대로의 멋이 있다.

물론 모든 건물들의 디테일이 화려하고 과다한 것은 아니다. 현암사만큼의 디테일이 없는 건물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디테일이 없는 경우이다. 이것은 다시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즉 디테일을 조형 어휘로 삼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현암사에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있다. 디테일도 있다. 다만 그 정도가 최소화되어 있다. 이것은 현암사의 디테일만이 갖는 특징이다.

이런 디테일 처리는 건축에서의 산업 이미지를 억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것은 다시 현대 건축의 강박관념 가운데 하나인 구조적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의미한다. 현대 건축에는 성기 모더니즘에서 구조주의 그리고 다시 후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공통적인 강박 관념이 하나 있다. 구조적 종속이 그것이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 역시 이런 강박 관념이 제3세계에서 정치 경제적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은 이와 같은 강박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에 건축적으로 보았을 때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세계 전체의 현대 건축에서 보았을 때 구조적 종속의 강박 관념은 두 가지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한 가지는 디테일의 과다이고 다른 한 가지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는 경우이다. 전자는 주로 고급 양식 운동에서 나타났고 후자는 소위 집장사 집에서 나타났다.

한국의 현대화 과정은 후자가 비정상적으로 번성한 경우에 해당된다. 주변을 가득 채운 무표정한 단순 육면체 건물들이 그것이다. 디테일은 철저히 지워져 있다. 디테일의 부재는 효율이라는 물신을 숭배한다. 디테일의 과다가 건물의 높이를 보장해주는 것과 반대적 의미에서 동의어이다. 이런 점에서 적어도 한국적 상황 아래에서 디테일의 과다는 디테일의 부재와 동의어이다.

디테일의 부재와 디테일의 과다 모두 구조적 종속이라는 강박 관념의 부산물이다. 이 강박 관념은 압축 현대화를 지향한다. 수직선은 그 이면에 숨은 조형 욕구이다. 이 조형 욕구는 산업 이미지를 통해 나타난다. 현암사의 디테일은 이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억제되어 왔던 디테일을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디테일의 부재를 불식시킨다. 그러나 디테일은 과다하지 않고 최소화되어 있다. 디테일의 부재와 동의어인 디테일의 과다를 함께 견제한다. 이같은 현암사의 디테일은 수직선의 조형 욕구를 거부한다. 이것은 결국 수평선을 지향하는 것과 같은 결과이다.

이처럼 현암사의 조형 어휘를 구성하는 대표적 세 가지 디테일은 모두 수평선을 지향한다. 이 세 가지 디테일은 모두 주변 환경에서 따온 것이다. 혹은 리노베이션되기 전 옛날 집에 있던 것일 수도 있다. 첫 번째 디테일은 현암사를 마주보고 서 있는 오래된 낡은 집에서 관찰된다. 두 번째 디테일은 그 및의 집에서 관찰된다. 7층 바닥 슬래브를 노출시켜 수평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 번째 디테일은 이 집의 담에서 관찰된다.

주변 환경에서 찾아지는 이 세 가지 모티브는 이처럼 현암사를 구성하는 조형 어휘의 디테일을 결정한다. 이것은 곧 세 가지 디테일이 주변 환경에 대한 맥락적 해석의 입장을 대표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 가지 디테일이 수평선을 지향함으로 건축가의 맥락적 입장 역시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테일은 맥락적 단서를 제공하며 이 단서는 건물 전체에 나타나는 맥락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수평선이 강조되었다 함은 잃어버린 전통 가치의 연속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수직선과의 일정한 혼재가 유지된다. 이것은 수직선으로 상징되는 발전 제일주의를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포한다. 역사 전개를 이끄는 동인으로서의 발전 지향성이 갖는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는 타협적 시대관을 의미한다. 맥락주의에 내포된 과격한 회귀성을 조심스럽게 중화시켜보려는 조형 의도이다.

현암사의 맥락주의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미묘하다. 끊임없이 관찰되는 양면성은 건축가의 의도를 감추고 있는 듯 하다. 보기에 따라서 현암사의 맥락적 연속성은 너무 순하기도 하다. '슴슴하다'고까지 할만하다. 원래 맥락주의에는 주변 환경과의 연속성이 오히려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역설이 있다. 지독한 역설일 수 있지만 맥락주의의 양식사적 중요성은 이러한 역설에서 나온다.

현암사에서는 이것을 피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직선의 상징성을 인정하겠다는 기본적 시대관이다. 맥락적 연속성은 이렇게 인정된 수직선이 수평선과 어울리는 범위 내에서 결정된다. 수직선의 상징성이 갖는 현실적 당위성을 인정하되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온화한 모습으로 중화되어 있다. 이러한 어울림은 한국 현대사를 혼재와 중첩 사이의 대응 개념으로 풀어낸 의미를 갖는다. 혼재로 상징되는 한국 현대사의 부정적 측면에서 중첩의 가능성이 읽혀지고 있다. 이것은 다시 혼재로 전환되어 건축 어휘로 표현되고 있다.

현암사의 출발점이 된 1970년대 양옥이 갖는 시대성이 있다. 서울의 현대화 과정을 담당했던 조형 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현동 골목길도 이제 90년대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직도 군데군데 1970년대의 모습이 남아있다. 현암사는 이것을 디자인 모티브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제 1970년대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다. 그 흔적은 현암사에서 1990년대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있다. 1970년대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 현암사는 그 모습이 어떠했다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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