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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99007 플러스 1999-10 일산온누리선교회 비평    1999

다질적 맥락주의: 일산온누리선교교회에 나타난 1990년대다움의 의미

임석재 /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베르그송(Bergson)이 근대문명의 초입기에 근대과학과 근대예술의 한계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것들 가운데에 어느 것도 인간사(人間事)의 다질성(heterogeneity)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수많은 현실세계의 현상을 인간이 창조한 매체로 파악하여 재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베르그송의 고민이었다. 더 큰 고민은 이같은 근원적인 불가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막무가내로 강요하는 근대 기술문명의 폐해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순간 도함수의 개념으로 정의되는 미분은 하나의 운동현상에 대한 완벽한 연속성을 정의해냄으로써 그러한 현상의 전 과정을 재현적으로 해석해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여겨져 왔지만 사실 이것은 양적인 측면에 한정된 반쪽의 성공이었을 뿐이다. 베르그송은 인간사의 질적인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재현해낼 수 없는 인간 매체의 불완전성에 대해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근대과학이 인간사의 양적인 문제를 다스릴 수 있게된 치적에 기뻐하며 기계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던 때에 말이다. 베르그송은 단순화와 표준화를 기본 속성으로 갖는 과학과 기계라는 매체가 다양함과 분화적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갖는 인간사를 다스리게 될 때 나타나게 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해 예언자적 모습으로 태산같이 걱정했던 것이다.

베르그송의 고민 이후 약 100년 안팎의 근대문명이 운용되어 온 뒤, 베르그송의 정신적 적자(嫡子) 가운데 한 사람인 들뢰즈(Deleuze)는 베르그송의 주장에 조심스런 수정을 가하고 타계했다. 들뢰즈는 베르그송의 부정적 매체론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 개념을 인간사의 해석에 적용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긍정적 가능성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줬다. 인간 매체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불완전한 연속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의 다원적 리얼리티를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들뢰즈의 매체론은 베르그송의 이상적 허무주의에 현실론적 수정을 가함으로써 긍정적 허무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한 고육책으로 보여진다. 들뢰즈의 고육책은 혼란기를 일거에 정리해주는 주도적 사상이 실종된 다원주의적 시대상황 아래에서 현실적 타협에 무게를 둔 차선책으로서의 중요성을 갖는다.

1990년대의 한국, 서울 혹은 그 주변. 이 땅은 100년 전에 베르그송이 했던 태산같은 고민이 가장 잘 적중된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우리 것을 다 잃고 그렇다고 세계 보편적 기준의 수준에는 아직도 까마득히 먼 근대문명의 사생아 같은 곳. 수치화된 양화(量化)를 다루는 가장 하급의 물질매체가 인간의 정신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지옥과 같은 폐해를 교과서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 인간의 정신문제를 고민해야 될 현자들이 거지처럼 길거리에서 빌어먹으며 가장 추하게 타락해 가는 곳. 이런 것들이 근대 기계문명을 몇 십 년 운용한 끝에 남겨진 우리의 모습들 가운데 일부다. 물질매체와 정신매체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건축은 위와 같은 폐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분야 가운데 하나가 되어왔다. 그렇기에 그만큼 극단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장난이나 일회성 마스터베이션 같은 것인지는 그 주장을 펴는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건축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참한 상황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건축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건축가가 아무리 시대를 앞서 훌륭한 생각과 작품성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 작품에는 동시대의 건축 수준 혹은 좀 더 포괄적으로 얘기하자면 동시대의 총체적인 문화 특성이 조금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마치 건물이 그 지역의 토양을 빨아들여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 시대 그 지역의 구성원들이 내뿜는 공기와 내뱉는 말들 그리고 품고 있는 생각들이 모여서 그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건물은 한 시대에 대한 거울 같은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지난 수십 년간의 근대문명 운용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리의 조형환경적 상황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들의 작품 속에 표출되기 마련이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이 그러하고 이것이 집단화된 결과인 사회적 요구 수준이 그러하다. 관청이 방해하는 정도가 그러하며 건설회사의 현장 완성도가 또한 그러하다.

혹자는 이렇게 반영되어 나타나는 한국 현대건축의 집합적, 공통적 특성을 "한국적 촌스러움"이라며 부정적으로 부르기도 하는 반면 또 다른 혹자는 그런 것이 좋건 싫건 모두 우리의 자화상 같은 현실이라며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중립적, 사실적 개념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혹자는 "한국적 촌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쌓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급적 외국 건축가의 작품과 비슷한 분위기로 보여지기 위한 창작적 노력이나 이것을 현장에서 원하는 대로 시공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경우 "한국적 촌스러움"에서 탈피한 정도가 건물의 작품성이나 창작성과 거의 동일시되는 우리만의 평가기준이 형성되기도 한다. 반면에 또 다른 혹자는 서양식의 세련됨을 작품성에 대한 벤치 마킹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 자체가 지극히 사대적인 발상이라며 우리의 현실을 자신 있게 받아들이자는 민족주의적 주장을 펴기도 한다. 모더니즘은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서열식으로 평가될 수 없는 지역만의 편차적 특성이라는 것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보편성-특수성' 논쟁이 그러한 민족주의적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된다.

확실히 집장수 집들로 빼곡이 들어차 있는 1990년대의 서울 혹은 한국의 물리적 환경은 건축가들에게는 어떤 의미로든지 간에 부담스러운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소위 작가 혹은 예술가임을 자처하는 모든 건축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당연히 그러한 환경보다는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가정하고 설계를 시작한다. 이때 머리 속에는 현재 세계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뭐뭐 하는 건축가의 작품 수준이 하나의 목표로 단단히 새겨지면서 "나도 이번에는 꼭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을 한 번 짠하고 보여줘야지"하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같은 가정 자체가 국적 없는 사생아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나 혹은 표절 논쟁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같은 것들이 문득문득 들게 만드는 논쟁들이 자주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의 작품을 주변환경과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닮게 만드는 거대한 힘의 작용을 수용하게 될 때의 무력감 같은 것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맥락주의는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방식 가운데 한 가지 일 수 있다. 맥락주의는 낯익은 단어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맥락주의는 지역주의적 특성이 강한 전통 회귀나 토속성 등을 기본적 가치로 갖는 맥락주의였다. 이러한 맥락주의는 고급문화로서의 화석화된 추상적 가치를 맥락성에 대한 기준으로 가정함으로써 정의된다. 그러나 맥락에는 이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맥락 혹은 맥락주의는 여러 단계로 분화시켜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집장수 집으로 가득 찬 서울의 평범한 골목길 풍경도 하나의 맥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풍경은 지금까지는 항상 열등하고 불완전한 환경으로 인식되어 왔다. 곧 언젠가는 철거 될 대상이었으며 작품적 가치는 전혀 갖지 못하는 우리의 수치스러운 자화상 정도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을 떨쳐 버리고 집장수 집으로 구성되는 골목길 환경도 하나의 훌륭한 예술적 출발점이라는 생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맥락주의로 정의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맥락주의를 "다질적 맥락주의"로 부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며 우리 주변에도 이 같은 다질적 맥락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 예들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다질적 맥락주의의 기준이 되는 이 시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상적 조형환경은 혼란스럽고 건조하며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더니즘 건축을 운영해 온 수십 년 역사의 흔적과 이 시대 한국의 상황이라는 동시대성의 의미가 농축되어 숨어있다. 이것만으로도 외관상의 미추(美醜) 문제를 떠나 우리에게는 소중한 예술적 소재가 될 수 있는 무게를 갖기에 충분하다. 좋건 싫건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운용하며 남긴 모더니즘의 역사적 흔적에 대한 건축적 해석은 너무도 훌륭한 예술적 소재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외관의 열악성을 걷어내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핵심적 내용을 보편적 건축어휘로 환원하여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건축 상황에 대한 훌륭한 작품적 기록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예술적 가치를 획득하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이때 보편적 건축어휘로의 환원이라 함은 건축의 축조적 구성법칙에 대한 일정수준 이상의 고난도적 해석법칙과 형태를 보기 좋게 다듬어내는 솜씨 등과 같은 건축가로서의 기본 자질을 가정적으로 요구한다. 그리고 필자는 <일산교회>에서 읽혀지는 건축적 의미를 이상과 같은 다질적 맥락주의의 좋은 예로 들고 싶다.

<일산교회>는 언뜻 보기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조형환경 어휘들을 혼성하여 놓은 듯한 편안한 분위기로 첫 모습을 드러낸다. <일산교회>의 이러한 특징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주변 조형환경의 다질적 특성을 자신의 건축을 결정짓는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이것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건물이 들어서는 주변 조형환경에 대해 흔히 갖기 쉬운 경쟁적 우열 가리기의 입장이나 그 열악성에 대한 다다적 부정의 입장 등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그 대신 있는 그대로의 주변 조형환경을 받아들여 예술적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 건물은 다질적 맥락주의로 분류될 수 있는 기본 건축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용한 재료나 시공상태 등을 보더라도 주변의 평범한 집장수 집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급재료나 정갈한 시공 등을 좋은 작품에 대한 선결 조건으로 생각하는 일부 건축가들과는 분명히 다른 배짱으로 느껴진다.

<일산교회>에서는 분명히 군데군데 서툰 집장수 집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엉성한 마감상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것이 질적 미달보다는 편안함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건축가로부터 이 시대 한국 건축계의 보편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공시적 배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덤덤한 얼굴로 두런두런 들려주는 시공하면서 애먹은 얘기는 이런 느낌을 한 몫 거들었다. 대개의 건축가들은 불량한 시공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이것밖에 안되었다고 불평하는 것이 보통이다(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런 불평 속에는 원래 자신은 더 훌륭한 건축가라는 암시가 강요되고 있다). 혹은 형편없는 시공업자를 어르고 야단치고 가르쳐 그나마 이 정도 지은 것도 다 자신의 능력 덕이라는 공치사를 하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일산교회>의 건축가는 열악한 시공수준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한 요소라면 그것조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아니면 평당 180만원이라는 저가의 공사비가 절대절명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더 솜씨 좋은 시공업자를 못 고른 탓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일산교회>는 모든 점에서 1990년대 한국건축의 평균수준을 기본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으로부터 예술적 조건을 찾아내어 작품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일산교회>에 나타난 다질적 맥락주의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공공 가로변을 향한 부분에는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적으로 촌스러운" 오피스 빌딩의 어휘가 쓰였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교회라는 기능 유형을 뛰어넘어 다질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피스 빌딩의 어휘는 교회라는 기능에 맞게 적절한 건축적 해석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맥락적 조건의 무조건 수용에서 오는 위험을 잘 극복하고 있다. 오피스 빌딩의 어휘가 쓰인 이 부분은 기능상으로 볼 때 교회의 본당을 담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 맞게 멀리온이라는 오피스 빌딩의 어휘를 수직성의 개념으로 해석하여 교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징성은 멀리온을 옆으로 끼면서 지하 본당으로 걸어들어 갈 때 더욱 분명하게 느껴진다. 시내에 흔한 3-4층 짜리 은행 건물에 즐겨 쓰이는 전형적인 오피스 빌딩의 어휘가 이를테면 고딕성당의 것과 같은 수직선으로 둔갑하여 느껴지는 경험은 신선하다. 맥락적 조건을 차용한 후 기능 해석을 통해 형태요소로 정의해내는 이런 과정은 건축적으로 강력한 타당성을 갖는다. 반면에 본당부분의 오른쪽 위로 주택가를 면하고 있는 1∼3층은 본래 근린시설로 계획됐다. 이 때문에 이 부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의 모습으로 처리됐다. 이런 가운데 절벽, 골목길, 지평 끝의 하늘 등과 같이 능선이 많은 서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물리적 골격이 계단, 복도, 가벽 등과 같은 기능요소에 맞춰 적절한 건축어휘로 번안되어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고 <일산교회>가 주변환경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무기력한 작품은 아니다. 혹은 단순히 주변환경의 조형요소를 차용하여 짜깁기한 모방품도 아니다. <일산교회>에서는 구석구석 건축의 축조적 구성법칙이나 조형조작 등과 같은 기본기에 있어서 진지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주가 눈에 뜨인다. 여기에 더하여 교회라는 기능에 맞는 상징물을 섞어 쓸 줄 아는 적절한 기교나 비례와 스케일을 잘 다루는 소질도 느껴진다. <일산교회>는 휴먼 스케일을 기본 척도로 지키는 범위 내에서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부터 웅변 같은 장쾌함까지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건물이 몇 미터하는 수치가 아닌 감성의 크기와 종류로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다질적 맥락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기들은 다름 아니라 주변환경의 다질적 요소를 건축적으로 해석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건물의 전체적 조형 윤곽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만의 작품성에 해당된다.

이 모든 것들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설익지도 않고 적정한 선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표출되고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일산교회>의 다질성은 자연스러움을 가장 큰 장점으로 갖는다. 다질성은 혼성(hybrid)과 자연스러움(naturalness)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정의된다. 이 가운데 혼성은 이질요소간의 의도적 혼합을 기본 조형관으로 가지며 그만큼 시대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의견 표현이 수반된다. 그러나 혼성은 때로는 화려함을 가장한 다다적 냉소를 담기도 하는 등 주변상황에 대해 최소한 한 번 이상의 곡절(曲折)적 해석을 거치게 되어 있다. 반면 자연스러움은 맥락에 대한 순응을 바탕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연속성을 찾아내겠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적 조건은 베르그송과 들뢰즈가 고민했던 것처럼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움으로서의 다질적 맥락주의는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러한 불완전한 연속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나름대로의 다원적 리얼리티를 형성하려는 긍정성을 강점으로 갖는다. 다질적 맥락주의는 들뢰즈의 긍정적 허무주의가 건축적으로 구현된 예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테면 50%쯤의 현실순응, 30%쯤의 건축어휘 구사 능력과 조형각색 능력, 20%쯤의 시대 해석으로 구성되는 <일산교회>의 다질적 맥락주의는 1990년대 우리 건축계의 복잡한 땅 나누기 싸움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절묘한 균형점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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