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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97006 플러스 1997-08 일산314412주택    1997

표정있는 길을 집속에 둔 점포주택 - 일산314412주택

최연숙기자

채나눔의 건축철학을 주장하는 건축가 이일훈이 건축이란 진실한 삶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진실한 삶을 담는 공간은 매우 섬세한 신경을 필요로 한다. 집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에서부터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각자의 방안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행위까지 건축가는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덧붙여 그 공간 속에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까지 건축가의 계획은 거주자의 삶과 같이 녹아 들어가야 한다. 이 집은 그런 면에서 거주자의 편이를 만족하면서 건축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건축공간의 의미가 잘 표현되었다.

건축가 권문성은 줄곧 '집속의 길' 을 얘기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가 생각납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정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맴돕니다. 차가 드나드는 큰길에서 골목길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던 집으로 가는 길은 '공간' 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된 최초의 경험인 듯합니다. 그 폐쇄된 공간이 때때로 놀이터가 되고, 이웃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 그러한 장소를 세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집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집은 표정을 갖는 길이 있고, 그것은 한울타리에 모여 사는 사람들과 공유된다. 다가구 주택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건축형식이다. 한정된 땅덩어리에 모인 사람은 많으니 , 자연히 허공을 나누어 살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닥지닥지 모여 이룬 주택촌은 다가구주택으로 가득찼다. 지붕이나 옥상 공간의 활용이 용이한 상부는 주인집이, 나머지 층은 세입자가 사는 자장집같은 형식의 집. 그들 집들은 대부분 컴컴한 공용계단실을 한쪽에 두고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주거형식은 그리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적층형의 고밀도 주거가 시대의 요구라면 그에 맞는 주거형식을 제안하는 것도 건축가의 마땅한 일인 셈이다.
여기도 이 집을 가운데 두고 무표정하게 빽빽히 들어선 점포주택들이 가로의 성격을 지배하고 있다. 비슷한 예산, 거의 같은 여건으로 지어진 건물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설계하고 시공한 사람의 기본 생각자체가 다르니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집 앞에 서서 이 물음을 끄집어 내지 않는다면 일반인과 괴리되어 행해지는 건축의 현주소와 이 시대 집짓기의 행태에 대한 반성의 기회는 다시 마련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전용주거 단지형태의 성격을 지닌 일산신도시에 장사도 될 것 같지 않은 점포를 왜 규정처럼 1층에 두어야 되는지. 이 집도 점포주택단지라는 가로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현재 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1층을 이후 점포로도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두 세 명이 이야기하며 같이 오를수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주변의 건물군에 의해 만들어진 연속된 시선축을 관망할 수 있는 발코니와 각 주호가 공유하는 복도를 만나고 이윽고 콩자갈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오르면 좌측 안뜰과 마주하는 현관을 만난다. 자작나무가 심겨진 안뜰은 1층부터 3층가지 수직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 작은 안뜰은 집이 자연과 함게 숨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곳이다. 너무 작아 직접 그 공간을 드나들면서 즐길순 없어도 낮인데도 연일 전등을 밝혀야 하고, 에어컨과 보일러 등에 실내환경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주거에 빛과 바람을 자연스럽게 실내로 끌어들인 지혜임에는 틀림없다.

집은 4개의 벽으로 구획되어 있다. 벽돌과 드라이비트로 재료를 달리하며 세워진 벽은 각기 다른 기능을 적절히 구분하고 집속의 길을 만드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층은 흘형 점포와 내실형 점포와 주방을 구획하고, 2층은 두 가구의 임대주택을 양쪽으로 나누고 있으며, 3층은 거실, 식당, 부엌, 현관 등의 공용공간과 침실과 서재 등의 개인공간을 구획하고 있다.

그러면서 1층의 길은 가로에서 건물 안으로 인입하는 강한 성격을 부여하고, 2층의 길은 양쪽에 임대가구를 배치, 산동네 골목길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했고, 주택 내부로 이어지는 3층의 길은 걸어 왔던 길을 돌아볼 수 있게 구획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진 저층부와는 달리 목조로 경쾌하게 설계된 3층이 여기서 주인공인 셈이다.

집밖의 길은 집안에서 또다시 연장되고 집 내부에서 그 표정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길은 통로로 때로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그리고 한울타리 식구들이 생활을 나누는 장소로 사용된다. 주인집 내부에 들어서면 외부의 벽돌을그대로 내부 벽의 재료로 가져와 외부의 길이 연장되어 펼쳐지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건축가 권문성의 재료쓰기는 되도록이면 자연스러운 색과 질감을 가진 것을 택한다. 그래서 어렵게 수소문하여 구한 미색 고령토 부산물 벽돌 을 사용했다. 목구조로 되어 있는 집 내부도 그대로 구조를 노출하여 내부의 공간감을 증폭시켜 주었고, 지붕은 은색빛 나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덮어 이색적인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역시 집의 주요 주제인 길도 인위적인 물갈기로 마무리짓는 것이 아닌 콘크리트와 자연석 콩자갈을 섞어 투박한 자연미를 나타내려고 했다. 이러한 재료쓰기도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주제이다. 아직은 명확히 잡히기를 유보하고 있지만, 거친 질감으로 마무리되는 벽돌과 은은한 파스텔 톤의 드라이비트가 이루어내는 집의 표정들은 또 하나의 건축주제를 잉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대개의 집이 그렇듯이 초기 계획안대로 완성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건축주의 사소한 요구에 의해 전체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나마 이 집이 초기 계획대로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결정적으로 건축주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은 많았었지만 끝까지 그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어 무엇보다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속에서 자랄 아이들의 생활을 떠올리면서 흐뭇해 한다.

"아파트나 평범한 공동주택에서 자라는 아이와 이 집에서 자란 아이와는 삶의 공간에 대한 느김이 같을 수는 없지요, 빛이 드는 다락이 있고, 옆집 아이와 소곱장난이라도 할 수 있는 골목이 있는 곳에서 사는 아이의 감수성 ,그 아이들에게 공간에 대한 풋풋한 기억을 갖게 해 주고 싶었지요."

그의 바람은 아주 소박한 것이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공간, 이 집 속에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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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99003 A&C 1999-02 세상으로 열린 집 - 주택 만들기, 공공건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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