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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0006 이상건축 2000-11 현암사 대담 - 세상으로 열린 집    2000

현암사 대담 - 세상으로 열린 집

권문성 /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17
김승회 /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

권: 처음 건축주를 만나 집 고치는 이야기를 하면서 물었다. 많은 출판사들이 한 곳에 모여 집을 짓는다고 들었는데 현암사는 어떤가하고. 이때 전부터 일하던 이 장소에 대한 애착과 함께 '책 만드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이 생각은 내가 <현암사>를 고쳐지으면서 책 만드는 사람과 세상사람과의 관계, 새로 만들어지는 집과 동네와의 관계에 계속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복잡하게 다닥다닥 붙어있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나는 동네풍경 속의 집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김: 좋은 집이 지어지기까지는 건축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건축주, 대지, 시공자 이 세 가지와의 만남에 행운도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대지는 드라마틱한 위치에 있다기보다는 일상의 평범한 풍경 속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대지를 어떻게 해석해 나갔는지 궁금하다.

권: 건축주는 일이 시작되고, 계속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신뢰를 주었다. 항상 같이 의논하고 좋아하는 것도 많이 비슷해서 항상 상승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대지는 처음 볼 때부터 좋은 땅이라고 생각했다. 동네 어귀에 있으면서 언덕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경사에 기대야 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큰 길 쪽으로 장차 공원으로 바뀔 대지가 있어서 시야도 잘 열려있고 밖에서도 집이 잘 느껴질 거라고 생각되어 좋았다. 부정형의 자투리땅도 반듯한 기존 건물에 자연스런 파격의 건물을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했다. 성격이 분명한 동네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는 모습도 고민해야 했다. 적절한 긴장과 흥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대지였다.

김: 외부로 드러난 난 오프닝들이 평범한 주택에서 보여지는 크기를 갖고 있다. 주택을 리노베이션한 결과이겠지만 바깥의 풍경에 대응하는 창이 기존에 있던 주택 스케일에 맞추어져 있어 고만고만한 크기의 주변 풍경들과 잘 조화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권: 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 듯한, 뭔가 인위적으로 줄을 맞춘 것같이 조정된 집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일상적인 집, 건축, 공간을 만들어 살수록 정이 들고 가치가 드러나는 집에 더 관심이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집보다는 느슨하지만 느낌이 살아있는 집에 애정이 간다. 그리고 기존의 주택을 그대로 두고 덧붙여지어서 새로운 건물을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스케일로 전체건물을 만들어 내는데 수월하였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 이 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 중 하나는 기존 주택의 많은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며 진화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주택을 고치면서 일부 증축하는 방식이 새로 짓는 것에 비해 경제적인 면에서 불리했을 것인데, 기존의 것을 존중하고 고쳐나가는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운 방법을 선택하였다.

권: 건축주가 경제 논리만으로 이 집을 지으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 만을 생각하였다면 지금처럼 될 수 없었을 거다. 건축주가 출판이라는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다루며 살아온 분이어서 그런지, 불편하지만 이제까지 지내온 집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있던 집을 완전히 부수고 전혀 다른 집을 짓는 것은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김: 건축이라는 행위가 공간이나 장소를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시간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암사>는 시간을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흔적도 남아있고 새로 지어진 부분도 있으며, 새로 덧붙여진 재료 중에서도 세월이 지나면 퇴락할 재료도 보인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같이 있고 미래의 변화가 예감되는 집이다. 이 집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싶다.

권: 건축이 갖고 있는 시간성은 이번 건축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의지를 갖고 건축의 시간을 드러내 고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30년전 주택을 짓고 살던 사람들, 그리고 10년 전쯤 출판사에서 사무실로 사용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장소와 집에 대한 애착을 많이 생각했다. 새로 집을 만들면서도 전에 쓰던 집을 그대로 두고 싶은 마음은 처음 집을 지은 사람과 그 집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대부분 건축가는 이러한 삶의 기억들을 존중하고 싶어도 당시의 경제논리로 무시되고 포기하게 되는데, 이 경우는 건축주의 당연하고 상식적인 가치에 따라 당연한 작업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생각한 것이 있다면, 이 아현동 고개가 과거 광화문을 도시의 중심으로 한 변두리 지역이라는 것, 6.25 이후에는 도심에 생활 근거를 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달동네 같은 곳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상업적으로는 침묵을 지켜내고 있는 동네라고 것 정도이다. 이 동네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집과의 관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은 많이 생각했다. 건축에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분리해 내어 새롭게 정의하고 다시 건축에 정의하는 것과 같은 작업은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집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가, 그 가치를 어떻게 공유하면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건축에서 어떤 고귀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 떠있는 생각보다 진지하게 오늘을 사는 사람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김: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집이 외부에 대해 취하는 포즈가 개방적이지 만은 않다. 오프닝 몇 개와 돌출된 발코니는 하나의 제스츄어로 기능 하겠지만 그라운드 레벨에서 주변과 관계 맺는 방식은 오히려 소극적으로 처리된 게 아닌가.

권: 건축주는 동네 사람들이 동네 어구에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에 출판사에서 만드는 책을 전시해 놓고 차도 마시면서 동네사람들이 만나고, 책 만드는 사람들과 동네사람, 세상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열려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했고, 그 이름도 '북카페, 세상으로 열린 집'으로 하였다. 지하 세미나 실도 동네에서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고 외부에서 접근이 쉽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1층과 지하층이 실제 사용함에 있어 외부에 많이 열려있기 때문에, 바깥 세상으로 열려짐은 반드시 넓은 유리창에 만들어진 문으로 길가에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가게와 같은 열림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김: 그런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바깥을 대하는 집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 닫혀있는 면이 있다. 처음에 평면을 보았을 때, 물론 기존 건물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찻집을 겸할 수 있는 1층은 같은 경사에 의해 도로가 약간 높아진 레벨에서 평평하게 들어갈 수 있게, 비교적 퍼블릭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의지가 있었더라면 뒤쪽에서 들어가는 곳의 문이 조금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개구부의 크기도 좀 다르게 하는 그런 변화가 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니면 정면 입구부분의 바닥에서도 소프트한 마감 등으로 차이를 주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프로그램이 열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공간적인 장치, 주민들에게 개방된 시설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적인 장치를 말하는 것이다.

권: 옳은 지적이다. 나는 입구 쪽으로 열려진 창을 통해 내부 사람들만이 아닌 일상적인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앉아있는 것을 바깥에서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건물 관리의 편리함도 생각하고, 이 장소를 들어오는 사람에게 책을 만드는 집의 풍경을 아트리움 옆의 커다란 창을 통하여 한 눈에 보면서 들어오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외부에서 접근하는 친절한 장치가 더 필요했구나 하는 것을 집 짓는 도중에 느끼게 되었다. 입구를 더 강조할 수 있는 작은 제안을 했는데 경제적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지금의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덧붙일 수 있도록 설계 되어있어 언젠가 반영되리라 생각하고 있다.

김: 이 집은 크게 세 개의 공간의 켜가 있고 가운데 켜의 중앙에 아트리움을 만드는 것으로 공간이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한옥의 안채가 갖는 공간과 비슷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중정의 크기가 도면상에서 보면 커 보이는데, 실제 느껴지는 스케일은 적절해 보인다.

권: 연면적이 206평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데, 내부를 다녀 보면 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계단 길이에도 맞게 만들어야 하는 아트리움의 크기에 있어 적정 스케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지 확신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적정 스케일을 가늠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때 전통주택의 안마당의 공간질서를 많은 참조하였다. 서울건축학교에서 두 학기 동안 '전통건축의 공간질서'를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얻은 결과들이 도움이 되었다. 그 전의 주택을 지으면서 어렴풋하던 것들에서 반발자국 정도 진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 아트리움을 중앙에 두고 ㅁ자의 균일하게 동선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는 막히고 어딘가는 트이고 하면서 다양한 관계들을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중정에 대한 해석이 과거의 다소 직설적인 해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권: 중앙의 아트리움과 주변의 공간과의 관계가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갖게 되는 이유는 입체적인 적층에 따라 만들어진 계단 때문이다. 직선 계단으로 각 층마다 동선의 시발점이 이동하게 되고 이로부터 시작되는 순환동선, 각 실 구성들이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곳과 덜 중요한 곳, 번잡할 수밖에 없는 곳과 좀 한가해 질 수밖에 없는 곳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김: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각각의 면들과 레벨에 따라 상당히 다른 표정을 지닌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굉장히 즐겼을 것 같다.

권: 건물이 머리 속에서 처음부터 다 계획되어 있을 수가 없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을 느끼면서 즐기고 흥분 속에서 작업했다.

김: 그러니까, 집의 각본이 처음부터 짜여져 있던 것이 아니라,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집도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건축가와 집이 서로 변증법적인 프로세스가 있었던 것 같다.

권: 설계과정 뿐만이 아니고 설계가 끝나고 공사하면서도 계속 처음의 생각이 조정되었다. 처음 생각들이 강화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였다. 수많은 결정이 필요하고 그 결정에 가장 알맞은 시간들은 집을 짓는 과정 속에 있다. 경륜이 더 많아지면 많은 결정사항이 좀 더 앞으로 가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참으로 어렵다. 이와 같은 과정이 내게는 집을 완성을 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 이 집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반복되는 계단이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장소들이 고유한 경험을 갖도록 하는 '흐름의 프로세스'을 세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권: 처음부터 뭔가 반복되고, 하나의 경로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흐름의 프로세스라고 한다면 입구에서 시작하여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갈 때까지의 커다란 시나리오가 있고 매 층을 순환하는 시나리오가 붙어 있다.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 순서대로 즐기고 경험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의도한 시나리오 중에 어느 부분을 자르고 지나가더라도 전체 시나리오의 부분임을 바쁜 일상 중에서도 기분 좋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싶었다.

김: 이 집이 갖고있는 공간적인 특징을 말하자면, 과거의 주택의 크기들이 만들어 내는 스케일이 첫 번째 이고, 증축하면서 증축한 매스와 기존의 건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 가운데 있는 아트리움이라는 구심적인 공간, 그리고 마지막이 느슨한 옥상의 마당들이다. 앞서 세 가지의 특징은 언급을 했으므로 옥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면 한다. 이 집에서 굉장히 소중하게 다룬 것 같은데.

권: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요구한 것은 기본적으로 출판하는 일 때문에 일어나는 편집관련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가 만드는 책을 매개로 하여 독자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현실로도 만날 수 있는 물리적인 장소가 필요하다 하였다. 그래서 1층과 지하층을 세상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옥상도 마찬가지다. 옥상을 만들면서 건축주가 나한테 예를 들기를 출판사에서 만든 '우리가 알아야 할 별자리'라는 책의 독자인 사람들이 모임이 있고 이들에게 현실세계에서도 별자리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킬 프로그램을 출판사에서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천체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기증한다고 하니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옥상에 있었으면 하였다. 별을 보고 여러 사람이 별자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장소도 아울러 필요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출판사를 통해 책을 만든 야생화 전문가가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으면 하였다.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쉴 수도 있고 외부에서 사람과 함께 즐길 수도 있는 옥상을 생각했다. 건축주가 좋은 생각에서 비롯된 요구들을 어떻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일하는 환경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동네하고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작업하였다. 칭찬인지 불만인지 같이 작업하는 파트너 이경락소장은 나한테 너무 건축주가 말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김: 그건 건축가가 지녀야할 미덕일 것이다.

권: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것 말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껏 한다. 어떤 경우에도 건축주의 요구자체가 제약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 이번 작업은 어떤 부분에 대하여 말을 꺼내도 건축주와 함께 한 대화나 주변동네 이야기로부터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김: 집이 크게는 세 개의 덩어리로 되어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작은 부분에까지 건축가의 손길이 닿았음을 느낄 수 있다. 가구라든가 책꽂이, 난간, 벽돌화단 등. 나름대로 섬세한 작업을 하신 것 같다.

권: 주택을 사무실로 바꾼 까닭에 주택의 스케일이 살아있는 것이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스케일의 느낌들을 곳곳에서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 재료 사용한 것을 보면 벽돌과 적삼목, 석고보드 위 페인트 등이 주조인데, 증축한 부분에만 적삼목 사이딩을 쓴 것은 증축부를 분명히 보여줄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권: 전부터 있던 건물과 새로 덧대어 지은 건물을 구분하여 드러내고 싶었다. 재료도 다르고 형태도 기분 좋은 파격으로 느껴지길 원했다. 집을 지으면서 나무가 꽤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런 것들이 처음부터 결정된 것은 아니다. 벽돌이 쌓여진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가까운 곳에서 보면 벽돌벽은 벽돌 하나 하나가 조합된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측면에서 비스듬하게 바라보면 수직의 줄눈은 가려지고 수평의 줄눈이 잘 드러나 마치 수평선의 조합처럼 보인다. 조적벽과 새로 덧붙여 지은 건물이 한번에 보이는 부분이 입구 계단에서 현관까지의 공간인데 이곳에서 양쪽이 재료는 다르지만 수평으로 길게 뻗어있는 유사한 느낌의 두 재료가 병치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 아트리움의 볼륨은 크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의 스케일은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세심한 스케일의 조정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작업은 설계단계에서 모두 이루어지기는 불가능한 것인데, 현장에서의 설계를 많이 하였을 것 같다.

권: 설계를 하고, 현장에 와서 보면 설계하면서 한 생각들이 상당히 정리가 덜 된 것이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지금 짓고 있는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내가 그려놓았음을 깨닫게 되고, 그런 것들은 바꿔줘야 했다. 이런 일들은 내 능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10년 후쯤에는 그런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경력이 많은 훌륭한 건축가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대부분 사무실에서 이루어지고 현장 조정이 아주 작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때가 언제쯤 될까 생각하고 그 순간이 기다려진다. 사는 사람들을 위해 스케일 조정을 한다든지 부분적으로 계속 만져주는 그런 작업들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작업의 질을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김: 그런 보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집은 한번 지어지기 시작하면 자체의 어떤 생명력이 생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무실에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암사>는 시스템이 한번에 읽혀질 정도로 굉장히 논리적이다. 기존의 집을 리노베이션하는 경우 분명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기존의 주택작품의 경우 공간의 명쾌한 조직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흐리는 편이라고 생각해와서 그런지 특별한 경우로 보인다.

권: 4개 층이 적층된 것을 하나의 집으로 풀어내야 하니까 보통 주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보통 주택처럼 기능을 쏟아 부어놓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 집이 완성될 수 없다. 기존의 주택이 분명한 질서를 갖고 구성되어 있었고 그것을 읽고 덧붙여 풀어낸 것이다. 기존 집을 보고 새로 설계하기 위한 로직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다. 보는 순간 "이건 두 켜가 있고 가운데가 비어있는 거구나, 덧대어 짓는다면 한 번 더 반복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증축하면서 기분 좋은 생각이 하나 더 들어간 게 있다면, 중앙의 바닥을 뜯어낸 것이다. 뜯어낸 부분은 자연스럽게 퍼블릭 공간과 어울리고 그 양쪽으로 기능실이 들어가는 그런 것도 몇 번 생각하면 쉽게 얻어지는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작업으로 기존의 질서가 더욱 명쾌하게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김: 기존 주택에 마련된 사무실 부분은 다른 공간들에 격리된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중심공간의 뒷 배경 같이 작용하여 그것을 강조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프닝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중심공간과 소통하는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아트리움을 향한 벽에 설치된 책꽂이 칸의 몇 개를 창으로 만들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곧 그런 제스쳐가 개인적인 유희같이 생각되어 편집실과 같은 작업공간은 오히려 내부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하층은 원래 벽이었지만 채광문제로 창으로 바꿨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여 시선을 조정할 수 있는 스크린을 덧붙일 계획이 있다.

김: 통로의 끝에서 문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권: 나는 공간을 리니어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동선의 마지막 부분을 항상 창이나 발코니 등으로 열어 놓고 그 곳을 통해 밖에서 안이 보이고 다시 밖으로 연속되는,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마치 한 줄기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듯한 공간의 흐름을 만들고 싶다. 안과 밖의 공간적인 흐름이 잘 느껴지는 그런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항상 생각한다. 움직이는 동선의 끝을 데드엔드(dead end)로 만들지 않는다.

김: 끝으로 현암사 프로젝트를 통해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나눌만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싶다.

권: 현암사 리노베이션은 이전의 세상이 갖고 있는 질서를 존중하고 새롭게 정의하며 섬세하게 완성해 나가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기존의 주택을 허물고 시작한 작업이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미 주택으로 완성되어진 집이 갖고 있는 휴먼스케일이 자연스럽게 새집에도 드러나게 된 점도 그렇고, 수직 증축이 불가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취된 동네 집들과의 편안한 어울림도 그렇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참으로 쉽게 만들어졌다.


김승회

김승회는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 미시건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SOM과 서울건축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1995년부터 현재까지 건축가 강원필과 함께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배동 돌체하우스>, <벧엘기도원 숙소>, <거제대학교 정보관>, <서울대학교 환경연구원>과 <고성군 보건소>를 비롯한 다수의 보건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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