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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1004 건축사 2001-03 현암사 대담 - 전통건축의 교훈    2001

대담 - 전통건축의 교훈

권문성 /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17
전봉희 /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일시 / 2001년 3월 8일 오후 7시-9시
장소 / 현암사 1층 북카페 '세상으로 열린 집'

건축가 권문성과의 대담은 현암사의 1층에 자리한 북카페 '세상으로 열린 집' 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은 현암사 가족들에게는 외부인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고, 또 주변의 지역민들에게는 동네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대담은 오후 7시부터 약 2시간 가량 진행되었으며, 그 전에 작가의 안내로 현암사의 이곳저곳을 비교적 자세히 구경하면서 작품에 대해 그의 설명물 들을 수 있었다.

전: 반갑습니다. 그간 틈틈이 뵙기는 했어도 이렇게 정식으로 건축이야기를 놓고 마주한 적은 없었습니다. 며칠 전 건축사지로부터 대담 의뢰를 받고 잠시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하였지만, 평소에 관심을 가져온 분이라 한번 만나고픈 욕심에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나섰습니다. 혹시 제가 눈이 어두워 잘못 본 점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고, 또 때로 조금 실례되는 질문이 있더라도 용서하십시오. 사실 크게 여쭙고 싶은 것을 두 가지 정도 정리해왔습니다만,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앞서 조금 돌아가면서 말씀을 시작해 보죠. 우선 한국건축가협회상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이 처음 수상하신 것인가요?

권: 95년 10월에 사무실을 시작했고 첫 작업이 '일산22393주택'입니다. 그 주택으로 '1996년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전: 그 외에도 일산주택을 몇 개하셨죠? 큰 일보다는 작은 규모의 작업들을 주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간 어느 정도의 일을 하셨어요? 그리고 사무실 규모는 어느 정도이신지?

권: 매년 평균 세 개 정도의 건물을 작업했습니다. 직원은 저를 포함해서 3-4명을 유지해오다가 작년이후 한둘씩 늘어서 현재는 정식 직원이 저까지 7명입니다. 작은 일을 하면 좋은 건, 작은 일은 작업기간이 짧기 때문에 보통 수주에서 완공까지 일년을 안 넘으니까 그 다음 일에 대하여 사고가 연속되어 넘어 갑니다. 뭔가 실험을 하고 실수를 한 것이 그 다음 프로젝트에 그대로 반영되니까 그 점이 작가에게 좋은 것이지요.

전: 자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난번에 말씀해 주신대로 홈페이지(www.a-17.com)를 들어가서 그간의 작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로 사진으로 되어있어서 수박 겉 핥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작품들이 워낙 다양해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들이 있더군요. 그 하나는 내부와 외부의 문제, 다른 말로 하면 피막 혹은 경계와 개구부의 조정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통로와 광장이라고 하는 건축적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권: 동의합니다. 특히 내 외부의 관계는 제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현암사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 지만 작품들을 살펴보면 공간을 매우 철저하게 조형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주 작은 부분까지 건축가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공간이 굉장히 현란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권: 저 스스로는 사실 공간 자체에 대해서 특별히 뭘 만들어내야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설계하는 일은 생활을 중심으로 놓고, 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이 먼저 설정되면 공간은 그것을 실제로 완성하는 장치로써 덧붙여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걸 하나 만들어 놓고 생활을 거기에 집어넣는 방법, 부속시키는 방법 그런 게 아니라, 일단 여기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최대한 집어넣어 놓고, 그 다음에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기 때문에 공간이나 건축적인 완성도에서는 오히려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하나의 건물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겠지만, 아직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생각하고 실제하고,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보는 사람의 느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조금 구체적으로 현암사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중심의 보이드 부분, 즉 내부 중정의 경우 이 건물의 전체 규모나 기능으로 볼 때 지나친 감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 우선 그 규모에 대해서는 조금 큰 느낌이 있기는 합니다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집이 기존의 주택이 가지고 있던 평면질서를 그대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그 크기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이 집은 1970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평범한 이층집을 출판사로 쓰면서 부분적으로 개수하였고, 그것을 이번에 다시 전면적으로 개축하게 된 것입니다. 부족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대지의 북쪽 마당에 지금 우리가 않아있는 북카페가 들어있는 비정형의 매스를 덧대었고, 나머지 부분은 기존의 구조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조정하였을 뿐입니다. 기존에 있던 매스에 하나를 덧댄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트리움 부분은 원래 거실이 놓였던 부분이라 자연히 그 구조 스팬이 조금 크게 되어 있었고, 이를 비워버린 것이지요. 또한 여유 있는 폭의 복도에는 책장을 만들고, 또 아트리움 쪽으로 핸드레일을 겸하는 플랜트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증축에 대한 고려입니다. 대지의 남쪽으로 30평 남짓되는 대지에, 지금은 작은 식당으로 쓰고 있는 오래된 주택이 하나 있는데, 장차는 이 땅 역시사들여 증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곳에 또 다른 매스가 하나 더 들어가면 이 보이드 부분의 크기는 전체 건물 크기에 대하여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출입 로비 앞을 가로질러 1층 회의실로 이어지는 남북의 통로축 역시 그러한 증축을 고려하여 설정하였습니다.

전: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아까 두 가지의 큰 주제를 이야기할 때, 통로와 광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비단 현암사에서 뿐만 아니라, 중앙의 너른 공용 공간 그리고 그것을 자유롭게 수직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통로는 권소장님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입니다. 굳이 다른 작가와 구분하자면, 광장의 개념은 많은 작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것이고, 통로에 특별히 비중을 많이 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공간을 가로지르는 계단, 시시각각으로 전망이 달라지는 복도 등 말입니다.

권: 사람이 지나 다니는 통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암사 입구에서 현관까지의 통로를 보더라도 양쪽이 번갈아 열리고 닫히고, 내부에 난 창으로 안을 느끼기도 하며, 상부로 닫히기도 열리기도 하여 거의 매 발걸음마다 전혀 다른 느낌의 공간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현암사 식구나 방문자들은 무심코 이곳을 지나다 어느 순간에 특정한 공간경험을 특별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날의 날씨나 경험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기분까지를 고려한다면 그리 길지 않은 통로에 존재하는 구분될 수 있는 공간경험의 가짓수는 무한할 수도 있겠지요. 이와 같이 하나의 통로에는 수많은 공간경험이 숨어있고, 사람들은 이를 헤치며 뚫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하나의 통로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현암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다니는 출입구 부분이어서 더욱 다양한 공간경험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전: 그것이 공용공간에서 극대화된다는 말씀이지요?

권: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공간과 달리 공용공간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자연과 교류하는 공간이겠지요, 이를 건축화하여 체험하게 만들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느끼게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 현란하다는 지적에 대한 반격이 신 것 같은데요? (웃음) 하지만 아직은 건축가다 하면 마스터일러 즉 형태를 주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고, 또 건축공간의 소비 행태에 있어서도 각 건축가는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가를 선택하는 순서가 아닌가요?

권: 제가 생각하는 건축가는 건축주나 그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 위에에서 생활을 제시해주는 마스터 역할을 해야 하기보다는 건축주의 옆에서 그들의 생활과 건축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통전축을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건축요소와 재료를 갖고 그 집에 사는 사람과 그 집이 지어진 땅에 집중하여 놀라운 수준의 건축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바로 건축가의 것이 아닐까요.

전: 저 역시 동감이고 반가운 마음입니다. 전통건축들을 가보면, 구조, 재료 그리고 시스템이 모두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단지 미묘한 지형과 프로그램의 차이만을 가지고 그렇게 다양한 건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 때의 목수는 건축주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건축주의 원하는 바를 듣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열망으로 버무려서 최종적인 물건을 만들어내지요. 건축가가 전통건축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셨다면 저로서는 무척 놀라운 일이고 또 제 생각과 같습니다.

권: 건축사가이신 전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정말 고맙고 힘이 납니다. 전통건축을 볼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이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엄청난 고수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우리 건축이 갖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이라 생각합니다. 전통건축을 과거의 것으로만 여기고 건축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하여 너무 가볍게 여기는 현재의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그걸 읽으려 노력하는 것에, 남들이 덜 주목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스스로 신나기도 합니다.

전: 조금 구체적으로 디멘젼의 문제를 거론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암사의 경우 기존건물의 리노베이션이라는 제약도 있었고, 또 가구까지를 함께 디자인 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수치적 비례랄까 즐겨 사용하는 디멘젼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권: 전 절대적인 치수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 우리 사무실 도면의 치수를 보면 끝자리가 0으로 잘 안 떨어지는 것이 흔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영역, 그 한계 내에서 어떤 비례로 나누어 이쪽으로 얼마하는 식이기 때문에 비례에 대한 느낌뿐이지 절대적인 크기는 없습니다. 물론 미니멈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그것보다는 상대적인 것에 대해서 관심을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전: 현암사의 경우, 작은 건물임에도 매우 넓게 보입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매우 큰 건물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사무실 등을 보면 아주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전체 면적은 얼마나 됩니까?

권: 현암사가 크게 보이는 것은 역시 중앙에 있는 아트리움 때문입니다. 그것의 평면적 크기는 기존 주택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다시 지하층에서부터 2층, 지붕까지 툭 터진 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처음 건축주 요구는 170평 정도의 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협의하면서 조금 늘어나 206평이 되었습니다.

아트리움이 필요했던 이유를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면적을 만들기 위하여 조적조의 기존 주택을 수직 증축하기 어려웠고, 옆 마당에 덧붙여 짓더라도 면적이 부족하여, 기존 건물의 지하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살만한 지하공간을 만들려는 해결방법이 아트리움입니다. 경사지 언덕의 흙에 묻혀 있는 지하를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야 했지요.

전: 건축주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권: 현암사는 오래도록 출판업을 해 왔고, 이 사회의 문화를 담당하고 있다는 자존심이 강합니다. 건축가를 문화인으로 대우하며, 저의 의견을 언제나 존중해주고 필요한 아이디어를 적절하게 제시하여 협의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좋은 건축주가 좋은 건축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전: 규모의 과장이 단순히 아트리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사진을 찍을만한 앵글이 많이 나온다든지, 서로 표정이 다르다든지 하는 부분에도 있을 것 같은데요.

권: 여러 곳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면에서는 낮은 핸드레일이나 유리면이나 벽면이 모두 동일한 선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공간이 잘게 분할되어 있어 보이지만, 각각의 장소마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북카페에 앉아있는 우리의 시선은 출입구의 통로화 아트리움을 지나서 건너편 복도와 그 너머의 방에 있는 책장까지를 한 번에 보게 됩니다. 거기까지 인지하면서 우리가 여기 앉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쪽의 공간이 저 너머로 증폭되어 교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벽으로 끝나 막힌 것하고 계속 관계를 맺어 증폭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전: 자연히 이제 내부와 외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이 될 것 같은데요 처음에 두 가지의 질문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외부와 내부의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 느낌이 무엇일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하였는데, 나누어서 질문하자면 한가지는 우선 내부공간하고 외부공간하고 만나는 방법, 말하자면 경계라고 해도 좋고 표피 혹은 피막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떤 피막을 만들고 그것에 적극적인 구멍을 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구멍을 내는 것도 적극적이지만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경계를 만드는 것에도 열심이지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 구멍 즉, 연결이나 소통이라는 것이 적극적인 것이 지나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 다음에 한가지는 외부공간자체와 내부 공간자체에 대한 이야긴데, 외부공간은 굉장히 내부공간화 시키려는 노력이 읽혀집니다. 벽으로 좁힌다든지, 실내적인 조명을 한다든지, 위에다 뭘 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또 반대로 내부공간은 외부공간처럼 느끼게 만들어줘요. 아까 광장이라고 표현한 부분처럼 중심의 공용공간에 외부 공간적인 성격을 많이 넣고 있어요. 재료 사용도 그렇고 디테일도 그렇고. 그래서 외부공간과 내부 공간을 이렇게 서로 잡아 당겨서 중성화시키려고 하는 노력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만...

권: 제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는 사람 사는데 좋은 건 전부 외부공간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항상 외부공간에 살기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잘 집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 이것이 제가 만드는 사람 사는 집, 공간에 대한 목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통건축 한옥을 그 예로 말씀드리면, 한옥에서 보면 대청마루에 앉으면 기분 좋다고 합니다. 그 '좋다' 라는 게 왜 생기느냐, 그건 마당하고 대청마루가 같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청만 있어서는 그 느낌이 안 납니다. 대청마루가 좋은 느낌이 나는 건 마당하고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간간의 관계가 대청마루하고 안방에서 다시 반복되고 집안 곳곳에서 다양하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부공간하고 외부공간이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있는 것을 '안마당과 대청마루의 두 공간이 얼싸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안고 있을 때 단순히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고 증폭되고 새로운 느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관계를 단순히 대청마루와 안마당,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으로 한정하지 말고 조금 더 확장하면 모든 공간에 미세하여도 상대적인 내부공간, 외부공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중간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얼버무리는 게 아니라 뭐든지 상대적으로 외부에 가까운 것, 내부에 가까운 것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늘어서 내부와 외부가 만나서 얼싸안으며 끝없이 증폭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모든 좋은 것은 외부에 있다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전통건축에 대한 뚜렷한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 데 조금 더 부연해 말씀해 주시죠.

권: 전통건축이 왜 기분 좋게 느껴지는가를 건축적으로 설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전통 건축을 우리에게 익숙해진 서양건축을 정의하는 요소들로도 당연히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좋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면 전통건축이 현재 우리가 하는 건축과는 아무 관계없는 것이겠지요. 좋다는 것을 건축적으로 설명하면서, 실제 건축으로 실험하면 전통건축의 기분 좋게 느껴지는 어떤 가치들이 현재형으로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 아까는 건축가의 역할을 목수에 비유하시더니 이제는 작업의 참조로 전통건축을 거론하십니다. 관련해서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드릴께요. 지난 2월 말 한국과 일본의 건축사학자들이 20명 가량 모여 연합세미나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참석하였던 일본인 건축사 학자 중에 젠노 야스시라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아시아 건축과 일본건축을 강의하는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인데요.

그 양반 강의에 아시아 각국에서 유학은 학생들이 많이 수강하는데, 매 학기마다 과제로 각자 자국의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관계에 대하여 리포트를 써오라고 하면,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열이면 열 모두 '마당' 으로 써 온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한국학생들에게는 마당을 뺀 나머지 주제로 써오라는 주문을 한다고 하여 모두들 웃었습니다.

웃기는 웃었는데, 사실 이게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건축사가 결국은 디자인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간 건축사학자들은 무엇을 한 것 일까? 마당이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마당만을 붙잡고 있나. 혹시 그간 건축사학자들이 자신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디자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권소장님으로부터 조금 더 진전된 이야기를 듣고 반가운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습니다.

마당 그 자체로도 집합주택을 하든지 할 땐여전히 유효하지만, 실제로 이런 단일 매스로 된 이런 건물들을 지을 땐 조금 힘들어지죠. 때문에 마당이 아닌 내부, 외부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즉, 켜로 생각한다면 단순히 마당이 공간들을 엮어준다든지 하는 배치계획적 관점만이 아니라 조금 더 현대건축에 붙일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 많은 사람이 쉽게 마당을 이야기하는데, 제 관점에서 볼 때는 비워놓은 외부공간을 그저 마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마당을 하나의 건축 요소로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독립된 요소로 이해할 수 없는 게 마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당이 어떻게 집의 다른 부분하고 관계를 맺고 있는가하는 관계 맺기에서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전통건축의 마당은 스스로 정의된 적이 없습니다. 비어있는 건 벌판이지 마당은 아니지요. 마당을 이렇게 관계 맺기로 정의하면 마당은 자연히 내·외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겠지요.

전: 권소장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당은 관계 맺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간적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겠는데요. 한옥을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모든 비일상적 행위, 다시 말해서 관혼상제와 같은 특별한 의식이나 행사 등은 모두 대청과 마당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일어납니다. 개개의 방들은 매우 얌전하게 일상적 생활 즉, 매일같이 반복되고 그러기때문에 사용빈도가 높은, 그러나 재미는 없는 행위들을 위하여 예비 되어 있지요. 현암사의 아트리움 특히 천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지하마당과 개실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보여집니다.

각 부분에 대한 의장에 있어서도, 마치 한옥의 대청에서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는 경사천장을 써서 공간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중심주를 굵은 원기둥을 써서 강조하는 것과 같이, 아트리움(다른 주택에서는 거실)의 천장을 높이 만들고 경사를 주고 계단을 걸고 오픈된 복도를 둘러싸서 에너지가 집중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스가 말한 서브드 스페이스와 서빙 스페이스 중에서 오히려 서빙 스페이스를 더 강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는데요.

권: 저는 좋은 게 모두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중요한 외부공간을 먼저 정의하고 설계합니다. 하나의 건축에 어떤 외부공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가장 먼저 설정합니다. 그리고 내부공간을 생각합니다. 주어진 실을 만들고 나머지 부분이 외부공간, 마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후에 실내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론 생각 하지만, 항상 외부공간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 위주로 풀어낸 다음에 이와 만나는 내부공간을 생각하고 상대적인 외부가 상대적인 내부와 만나는 방법으로 전개합니다. 현암사 뿐 아니라 작년에 완성한 '부천 에스피반도체 공장' 이나 완공을 앞두고 있는 '안성맞춤박물관' 같은 곳에서도 가장 집중하여 생각했던 것은 주어진 영역 안에서 외부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입니다. 그리고 그 외부공간에서 출발한 공간의 흐름이 또 다른 외부공간으로 또 내부공간으로 어떻게 전이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설계하며 생각하는 순서였습니다. 조금 전에 내·외부 공간의 말씀을 하실 때, 내부공간의 퍼블릭 스페이스를 보면 외부공간의 어휘들, 재료화 느낌들이 계속 살아있다고 하셨는데, 관계를 맺으려면 그 속성을 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구체적인 관계 맺기를 위하여 건축 외부에서 주로 사용되는 요소들이 내부공간에 많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또 그런 것들은 주택의 침실이나 개인적인 작업공간과 대비되어 외부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에 실내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외부의 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개인이 사용하는 사무실, 회의실 같은 방들은 내부공간으로서 은밀한 느낌을 주고 싶고, 스케일은 조금 더 작아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외부를 먼저 생각하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크기가 조금 작아지기도 합니다. 저는 작은 것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결국 통로와 광장, 전통과 목수의 모든 이야기가 내·외부 공간으로 모두 모아지는군요. (웃음) 그러면 처음 이야기하였던 현란함으로 한번 화제를 돌려보지요 권소장님의 작품들-현암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을 보면 특히 개구부의 위치, 크기, 형태 등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스 등의 큰 분절이 있기 때문에 통일감을 잃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감각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권: 그것은 어찌 보면 저의 작업방법하고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현장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설계할 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정되어 그려진 도면대로 현장에서 건축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저는 아직 그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설계하며 모델을 집중하여 만들지만 현실의 일대일 스케일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결국은 최종 결과물을 도면이나 모델로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다면 현장에서 건축을 완성시키기 위한 노력은 제 경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어떻게 느끼며 살게 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결정하는 것이 많으니 전체 건물을 하나의 질서에 맞게 엄격하게 조정하는 것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렇군요. 사실 치수가 0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든지, 미세한 차이를 갖는 형태 같은 것들은 현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설계안과 실제로 지을 때 바뀌는 부분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권: 큰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다시 고민하고 새롭게 결정해야할 작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작업이 집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그게 항상 장점이진 않을 것 같은데...

권: 글쎄요. 제 설계가 완벽하고 경험이 많다면 많은 부분들이 도면에서 끝나겠죠. 현장에선 진짜 몇 가지만 체크하면 완성된다, 이런 자신감이 생기겠지만, 아직 그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습니다. 그러니 현장와서 할 수밖에 없지요. 결정이 늦어지니 시간을 많이 써야 되고 그래서 사무실 운영이 어려운가 봅니다. (웃음)

전: (웃음) 아니 그 말씀도 있지만, 그보다 조금 아프게 말씀드린다면, 현장에 강하단 소리가 경우에 따라서는 좋게 들리지만 또 나쁘게 들리면 현장에 강한 만큼 개념에 약한게 아닌가라고 말할 수도 있거든요.

권: 전 뭐 개념 이런 것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집은 완성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개념으로 집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어려운 질문을 잘 넘어가십니다. 그러면 현암사의 완성도는 스스로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권: 그간 우리 사무실에서 한 작업과 비교하면 현암사는 많이 정리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족할 만큼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전 작업과 비교하면서 지금 우리가 이만큼 하였으니 또 다음 작업은 이 현암사보다도 조금 더 좋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전: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서, 현암사가 권소장님에게 느끼게 하는 한계는 무엇입니까?

권: 아직 여러 가지 시도가 있을 뿐 정리가 된 느낌이 아닙니다. 특히 헝태에 대해서도 작업하는 도중에 멈춰서서 끝난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또한 재료에 대해서도 목재나 벽돌, 유리에 대해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것은 저와 우리 사무실의 한계를 드러낸 것 뿐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조금 쉬어가는 질문입니다 사장실 옆에 있는 한실, 그 사랑방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사랑방이 저는 아주 반가웠어요. 현대 건축 속에 필요에 맞는 한실이 하나쯤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이곳에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역시 문인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그들과 오랜 연분을 맺고있는 사장이 가볍게 차도하고 또 기분 내키면 밤 늦게 술도 마실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이런 덤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전: 그것은 건축주가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너무 고맙죠. 사실 이런 이야기가 건축가로서는 조심스러운 제안 일 수밖에 없는데 먼저 이야기해주니까 너무 기분 좋은 거죠. 이 집을 보면 공간을 쓰는 방법에 대하여 다양한 요구가 있습니다. 그게 저에겐 굉장히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소도 많아지고 다양한 만큼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요구에 대하여 하나하나 집중하다보면 이야기가 좀 많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하나의 질서를 시원하게 푹 밀고 나가는 것 같은 집과는 달리 이 집은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는, 어떻게 보면 시끄러울 수 있는 집이죠. 하지만 이 집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시끄럽게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집을 설계하는 입장의 사람이나 이 집을 뜯어서 한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며 느끼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든 요소를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읽어 내지만, 실제로 이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을 겁니다. 자기가 쓰는 부분만 보고, 느끼며 나머지는 그저 배경처럼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이번에 건축가협회상 발표하면서 같이 나온 심사평을 한번 봤어요. 현암사에 대해서는 두 가지 내용이 언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나는 리노베이션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 맥락과의 관계를 지적하면서 재료를 거론하고 있거든요. 새로 만든 매스의 적삼목 슁글이 주변이랑 잘 어울린다는 의미로 말이예요. 동의하세요?

권: 재료는 제가 항상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 집의 주재료로 처음에는 1970년에 지어진 주택에서 사용되었던 붉은 벽돌을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손대지 않은 부분의 외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취약한 도로 쪽 구조를 정리하여 새롭게 외관을 정리하면서도 기존의 벽돌을 사용하려 하였지만, 기존의 벽돌이 부족하여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는 것과 같은 고령토벽돌을 주문해서 사용하였지요. 새로 덧붙여 지은 건물부분의 재료인 적삼목 슁글은 고령토 벽돌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결정된 것입니다 당초 붉은 벽돌이라면 원래의 적삼목 색깔이 좋겠지만 밝은 고령토벽돌이어서 이에 어울리는 오일스테인색을 결정하였습니다.

전: 선호하는 재료가 따로 있으세요?

권: 이제까지는 벽돌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벽돌이 가장 흔하고 싸게 쓸 수 있는 재료이면서도 시간에 대해서 검증을 받은 재료입니다. 벽돌은 인공재료이면서도 자연재료하고 많이 닮아 있어요. 또 벽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연배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집 하면 벽돌로 만들어지는 걸로 당연히 생각을 했잖아요. 그런 점들 때문에 아주 익숙한 재료를 그 재료가 가진 속성을 잘 이해하고 부분 부분에 맞게 다른 면이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내면서 쓰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색상에 대해서는? 벽이나 가구 등에서 흰색을 많이 사용하셨는데.

권: 저는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 흰색을 한번 덧칠하고 그리잖아요. 그런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암사 같은 경우는 실내공간에 책이 많이 있는데, 요즈음 책은 그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써서 잘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책장이라든지 다른 요소들이 색으로 드러나면 안되고 바탕으로 존재하면서 책 자체가 잘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 처음에 스터디 모델은 뭘로 만드세요?

권: 폼보드로 만드니까 집이 반듯 반듯하죠. (웃음)

전: 스케일은?

권: 일단 1/100으로 시작을 합니다. 1/50은 대부분 만들고 현암사의 경우는 1/30 스케일까지 만들었습니다. 1/30모델 만드는 일은 공사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전: 공사비는 얼마나 들어갔어요?

권: 평당공사비는 대략 300만원 정도입니다. 결과를 보면 많지 않은 예산으로 좋은 시공이었다고들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전: 시공자가 칭찬 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요? 가구비까지 포함해서입니까?

권: 가구비 포함하면, 평당 320만원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전: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좀 대중적인 이야기로 가서, 뭐랄까 건축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거든요.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해서...

권: 개인적으로 어떻게 수련을 했느냐는 말씀인가요?

전: 그게 어려우시면 영향을 준 선생님을 들자면?

권: 유걸 선생님께서 고속철도 천안역을 작업하시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유걸 선생님의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시는 방법, 작업하시는 태도와 같은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건축 스승은 무엇보다도 여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80년대 초 혼란한 사회환경으로 당시 대학에서는 학교를 못오게 하는 일이 흔했지요. 정상적인 수업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주로 전통건축을 보러 다녔는데, 저는 어디가 느낌이 좋으면 거길 다시 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가기 어려운 곳이어도 마음에 들어 10번 이상 간 곳도 있습니다.

전: 어디예요?

권: 그 중 내소사가 생각납니다.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는 서울에서 가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자꾸 가면 재미있게도 갈 때마다 다른 것이 보입니다. 이전에 본 거 말고 다른 것이 보이니까 이번에는 나에게 무얼 보여줄까 그것을 궁금해하며 자꾸 가게 됩니다. 또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여행가기 전의 내가 있고 다녀온 후의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전: 누구는 나를 키워준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하더니만, 권소장님의 경우는 8할이 여행인 모양인데요. 그것도 변산의 내소사.

권: 내소사는 긴장감과 여유가 함께 느껴지는 완성된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전: 그런 건축을 보면 재료의 절제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많은 것 같아요. 제한되어 있잖아요. 사용할 수 있는 재료나 구조방식들이. 그렇게 제한되어 있음으로 해서 통일성 같은 건 기본적으로 얻어지잖아요? 그렇죠? 그게 역설적으로 자유를 준다고 생각되거든요.

권: 저도 그 생각을 하는데, 재료, 구법, 디테일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주어지고 이미지 매치가 되도록 이미 정리 되어있다 할 수 있겠지요.

전: 그건 역사를 통해서 정련된 것이거든요. 실험된거고.

권: 사실 그것도 자세히 보면 조금 시끄럽다고 느껴질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읽혀집니다. 아까 제 작업을 보시고 '현란'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전통건축도 사실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시끄러운 이야기를 지붕으로 딱 눌러 버리니까 형태적으로 그 속에서 조금 시끄러운 이야기가 벌어지는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지요. 시선을 꽉 잡아 단번에 정리해 버립니다.

전: 제가 대담자라서 그런가요? 현암사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 전통 건축으로 갔는데 그것으로 마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현암사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우선 역사에 대한 태도이었습니다. 1970년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2층집이 30년의 세월 후에 지금의 건물이 되었습니다 비록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 때의 벽돌을 그대로 남긴 채로 말입니다. 역사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땅에 달라붙어 있는 기억들을 유지하는 힘이 놀라웠습니다. 현암사는 물론 다른 권소장님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내·외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흥미로왔습니다. 비로소 전통건축이 갖는 형태나 공간이 아닌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하는 과정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건축을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건축을 한다는 행위자체를 어떤 일로 생각하는가를 우리가 배워야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여 반가웠습니다.

다소 어울리지는 않지만 건축가 권문성을 목수 권문성으로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권: 저 역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건축에 관련해서 제가 중요한 교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건축을 하고 싶은 만큼 다 하면서도 생활에 굉장히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그 안에 사는 생활을 중심으로 건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건축이 생활과 유리되어 스스로 존재하는 것처럼 읽혀지는 부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활에 집중하고 또 주어진 평범한 조건만으로 이만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으로 전통건축에 놀라게 됩니다. 사실은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건축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특별한 것을 가지고 특별한 것을 연출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가지고도 모든 것을 해내고 싶습니다.

전: 장시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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