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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00010 플러스/이상건축/ 건축사 2000-10/11 현암사    2000

현암사 설계소묘

현암사는 아현동 언덕 기슭에 1970년에 지어진 주택을 손봐서 쓰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면 좁은 골목으로 아이들이 뛰어 놀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길가에 앉아 무슨 이야기인지 열심이었고, 할아버지들은 헐렁한 내의 차림으로 자기 집 마당을 나온 듯 편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한 때는 달동네라 불리던 곳인 듯, 작은 집들이 좁다란 골목으로 다닥다닥 붙어있고, 조금 번듯한 길가로는 덩치 큰 다가구 주택들과 상점으로 바뀌어 늘어서 사람 냄새나는 동네를 만들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를 불과 몇 분만에 갈 수 있는 이곳이 어떻게 6,70년대의 동네 모습이 유지되고 있을까.

정성껏 지어졌지만 이제는 곳곳이 물이 새고, 겨울엔 추운 집을 좀더 손보고, 조금 더 넓게 쓸 수 있도록 고쳐야 했다. 물론 헐고 다시 지을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지내온 집을 없애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30명 정도까지 늘어날 출판사 식구에게 필요한 만큼의 규모가 되는 집이면 족했다. 책을 만들며 기획하고, 편집 일을 하는 사무실, 저자를 만나고 출판사 식구들이 의논하는 크고 작은 회의실이 여럿 필요했다. 또 동네사람들이 자기 동네에 있는 출판사에 들려 그곳에서 만드는 책도 구경하고, 차 한 잔 마시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살수도 있는 작은 갤러리, 북 카페도 있었으면 했다. '소피의 선택', '별자리 이야기'와 같은 책의 독자들이 출판사에 모여 책 이야기도하고, 특별히 마련될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며 별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도 필요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우리 나무, 짚풀 문화, 환경상식, 우리 새, 우리 나무'같은 저자의 소중한 자료의 일부분을 보여줄 정원도 꼭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지혜를 묶어내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장소, 피곤해진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집이어야 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건물과 동네의 도시질서, 건축질서를 존중하면서 새롭게 정의하고 덧대어 짓는 조심스런 작업이 되었다. 기존의 건물을 헐지 않아도 되니 동네가 갖고있는 스케일이 새 건물에도 유지되리라 기대하였다. 도심에 짓는 건물이지만 빡빡하게 대지 위를 채워야 하는 집이 아니어도 되었다. 그저 동네와 어울리고, 그 집에 살 사람을 고민하는 건축이면 충분했다.

언덕에 기대어 지어졌던 주택의 지하는 언덕 쪽으로 흙에 묻혀 사람이 쓸만한 환경으로는 좋지 않아 1층을 시원하게 올려놓기 위해 만들어진 빈 공간이었다. 70년대에 지어진 집이면 대부분 그렇듯 지하실은 여유 있는 연탄광 역할을 하기에 적당한 만큼의 환경으로 채광과 환기가 거의 되지 않고 높이가 낮은 답답한 곳이었다. 출판사에서는 그 곳에 책꽂이를 가득 채워놓고 책들을 빼곡이 넣어두고 있었다. 1층 주택거실이던 부분에는 관리부, 영업부가 쓰고 있었고, 안방이던 부분은 사장실, 부엌은 가구를 들어내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2층 남쪽으로 난 발코니에 알미늄 샤시를 달고, 널찍하게 편집부가 사용하느라 작게 나눠진 방에 문을 만들고, 발코니 쪽 벽을 헐어내어 큰방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지만 잔뜩 쌓아놓은 자료와 책들로 빈틈없는 출판사 책상처럼 여유가 없고 불편하였다. 주택과 출판사는 어렵게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들어 밖을 내다보면 더 오래 전에 지어진 작은 개량한옥의 지붕이 마당 한곳에 심어놓아 굵어진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큰 길 건너 공덕동 언덕으로는 모스크의 둥그런 돔 지붕이 솟아오른 정다운 모습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올라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올려보면 언덕의 스카이라인이 계속 이어지고 그 위는 하늘이었다. 잊어버린 것 같은 우리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대지는 큰길 마포로에서 50m 쯤 떨어져 있는데, 큰길과 대지 사이 부분은 공원부지여서 머지않아 작고 푸르게 동네 어귀의 쉼터가 될 예정이다. 새로 손보는 집도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담긴 동네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하나의 집이 지어져 어떻게 동네와 어울릴 수 있는가. 기분 좋게 고친 마을 모퉁이 집이 전부터 있었던 듯 익숙하고, 동네사람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집이 되어야 했다. 또 그 집은 몇 십 년, 아니 그 이상을 잘 버텨내야 할 미래의 꿈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가능한 많은 부분을 남겨 사용하고 싶었다. 1970년에 집을 지은 사람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찾고 싶었다. 건물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가운데 통로를 만들어 입구, 복도, 계단을 만들고 양옆으로 거실, 안방, 화장실과 같은 방을 넣었다. 단순하고 합리적인 구성이다. 2층은 남쪽으로 널찍한 발코니를 만들어 언덕의 올라가는 경사지 동네에 잘 어울리는 매스를 만들었다. 특별히 드러내려는 욕심 없이 당연한 고민을 편하게 풀어낸 점잔은 주택이었다. 외부 붉은 벽돌벽의 대부분을 그대로 이용하고 담장과 옥탑을 헐어 생겨난 벽돌로 나머지를 완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코니 부분의 구조가 부실하여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새 구조로 보강해야할 부분이 많아 기존 주택 구조의 상당부분을 헐 수밖에 없었다. 벽돌을 쌓고 위에 테두리 보를 만들어 올린 구조로 부분부분 보완해야 했으며, 기존 주택 위로 건물을 더 올려 짓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대신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하층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오른쪽 주차장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주택과 이어 쓰는 것이 당연했다.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방이 늘어선 기존 건물의 질서를 그대로 새집에 적용하기로 하였다. 오른쪽으로 덧붙여 짓는 집과 기존건물 사이에 통로를 만들었다. 새로 고쳐짓는 건물은 세 줄의 일하는 공간이 늘어서고 그 사이로 두 줄의 통로가 있는 모습이다. 양쪽의 통로로 막혀버린 가운데 부분은 슬라브 바닥을 뜯어내 아트리움을 만들어 지하층까지 햇빛이 잘 들어가게 만들었다. 언덕에 지어져 지하층 남쪽이 드러나 있어 지하층의 창과 아트리움은 지하층만이 아니라 전체 건물의 내부 깊숙한 곳까지 충분한 자연환기가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아트리움에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놓았고 아트리움 주변으로 통로가 감아 도는 모습으로 만들어 집안 곳곳을 한 눈에 느끼며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층으로 나뉘어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하나의 공간 속에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폭이 넉넉한 통로에는 아트리움을 향하여 푸르게 늘어질 '별아이비'를 심을 수 있는 플랜트박스를 만들어 공간에 활기를 주고, 통로 안쪽으로는 출판사의 수많은 도서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책꽂이를 벽돌 벽과 두툼한 나무 널로 만들었다. 이동공간이면서 전시공간, 수납공간, 휴식공간으로 이용될 것이다.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천창은 햇빛을 부드럽게 산란시키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도 잘 들리게 만들 것이다. 외부공간으로 만들어진 새로 만든 통로와 함께 바깥세상의 이야기가 집안 구석구석 들어오도록 하였다. 아트리움의 맨 아래 부분인 지하에는 여유 있는 홀이 자연스레 만들어지며, 직원들의 실내 휴게 장소로 주로 이용될 것이고, 지하층 대형 세미나 실 앞의 시원한 여유공간 역할을 할 것이다.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하는 통로의 바닥, 계단 바닥은 나무 널로 마감하였다. 덧 붙여짓는 건물의 외벽과 새로 만든 통로와 아트리움 사이의 커다란 창틀, 계단과 난간의 손잡이를 나무 널로 만들어 집안의 열린 공간에서는 어디를 보아도 비슷한 느낌의 한가지 나무로 만들어진 집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나무 널은 환경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사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새로 덧붙인 건물의 남쪽 외벽 나무 널은 햇볕을 반사하여 아트리움 내부에 나무 색의 빛이 창으로 들어가는 생각을 하였다.

전체 건물의 형태는 내부 공간 질서인 세 줄의 기능공간과 두 줄의 통로가 그 대로 드러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셋으로 나눠진 건물은 작은 세 개의 건물이 연이어 서있는 모습으로 잘라진 부분 하나의 크기가 주변의 건물 스케일을 닮아 동네의 이웃집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운데 부분은 조금 높게 만들고 왼쪽 부분은 조금 앞으로 나오게 만들어 밋밋하지 않게 변화를 주었다. 기존 건물 부분은 밝은 크림색의 고령토 벽돌로 감싸고 기존의 주택의 형체를 드러내는 반듯한 모습이나, 새로 덧붙여진 건물은 이와 대비되게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고 나무 널로 감싸, 이미 있었던 건물과 새로 지어진 부분을 저절로 구분하여 느낄 수 있도록 들었다. 덧붙여진 새 건물의 형태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대지경계로 이그러진 사각형의 평면이 되었고, 뒤쪽으로 일조권 높이제한에 맞게 기울어진 벽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정면과 오른쪽 길에서 보이는 면은 주변 건물과 같이 반듯한 면이 되게 만들어 변형된 면과 공간을 밖에서는 쉽게 알 수 없도록 숨겨놓았다. 출판사 주 출입구는 새로 지어진 건물의 벽을 따라 만들어진 복도를 통해 들어가면 나온다. 뒷뜰에 심어 놓게될 오죽을 보면서 걸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출입구로 드나들면서 보이는 동네 건물들은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하여도 집 곳곳에서 동네의 여러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 통로는 좁은 편이지만 시작과 끝 부분을 나팔꽃처럼 둥글게 벌려놓아 전체적으로 곡면의 벽이 만들어 졌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부드럽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곡면을 따라 휘어져 붙여진 나무 널을 보면서 경쾌하게 입구를 향해 걷게 될 것이다. 건물 밖에서 출입문까지 조금 넉넉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를 만들어 여유 있고 풍성한 공간이 있는 집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들어가며 왼쪽으로 난 커다란 유리창을 통하여 출판사 내부 풍경을 한눈에 보게 한다. 밤이면 아트리움에서 배어 나오는 집안의 조명은 입구 앞 통로를 밝게 만들 것이다. 입구 오른쪽으로 손님을 위한 겔러리, 왼쪽은 일하는 출판사로 들어서게 된다. 덧붙여진 건물 1층은 '현암겔러리'라 이름 짓고 북카페, 전시 겔러리, 작은 이벤트 홀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하 세미나 룸과 함께 동네 사람과 출판사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이 될 것이다. 출판사 고유의 업무공간과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드나들 수 있게 고려되었고, 이곳만 방문하는 사람이라도 집 전체 모습과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출판사를 찾은 외부 손님을 맞고 접대하는 곳으로 하였다. 안내 데스크, 사장실, 회의실이 있고 온돌방 하나를 '현암사랑방'으로 이름 지어 문인들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2층, 3층은 편집부에서 사용한다. 각기 성격이 다른 두 개의 편집실이 있다. 1층에서 올라와 곧바로 별동으로 이어지는 곳에 편집주간이 사용하는 방을 만들었고, 잦은 회의를 고려하여 회의실을 하나의 공간에 넣었다. 주간의 업무공간은 미송합판으로 만든 'ㄱ'자 모양의 칸막이로 영역을 분명히 하였다. 밖으로 난 창문은 낮고 좁게, 수평으로 길게 만들었다. 서서 보면 동네가 내려다보이고 자리에 앉으면 멀리 언덕 스카이라인과 하늘이 이어져 보이는 높이가 되도록 하였다. 크지 않은 방이어서 큰 창보다는 수평으로 긴 작은 창이 오히려 옆으로 벌어져 와이드스크린의 풍경을 만들어 내도록 고려하였다. 다행히 한편으로 이국적인 모스크 돔 지붕이 장식처럼 눈에 들어온다. 벽을 가득 매운 책꽂이는 벽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게 하얗게 만들었다. 꼽아놓을 수많은 책들이 잘 드러날 것이다. 편집주간을 만나러 온 저자에게 예우를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방 풍경을 연출하고 싶었다. 본 건물에서 별동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브리지를 건너 특별한 곳으로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건물과는 전혀 다른 소재인 철골과 유리, 알미늄 창으로 만들었다. 뒤쪽 출입구 상부를 통하여도 편집주간실에 딸린 회의공간으로 갈 수 있다. 직원들도 사용하게될 회의공간이나, 외부로 나와 다시 내부로 들어가게 하여 만들어진 불편함으로 편집주간이 주로 사용하는 회의공간의 독립성을 강조하였다. 3층 편집실은 독립적인 위치에 어울리는 성격을 갖춘 편집 팀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3층 편집실 건너, 기존 주택의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었다. 야생화 권위자와 함께 가꾸게 될 곳이다. 건너 주택 쪽으로 심어질 조릿대는 잘 자라서 뒷집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이고 옥상 정원에 앉게 될 사람에게 푸른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큰길 쪽으로 올라간 건물, 3층의 새 건물, 그리고 뒷집은 옥상정원을 둘러싸 조용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왼쪽 건물 옥상은 옥외 강의실이다. 별 관찰과 같은 야외 행사에 사용될, 출판사 식구 모두가 옥상에 모여 앉아 회의를 하기에도 적당한 크기로, 나무 널로 만들어진 계단형의 야외 강의실이다. 옥상정원 한 구석은 지금 젊은 천문대장이 열심히 렌즈를 깎아 만들고 있고 있는 천체망원경을 설치하도록 비워놓았다.

지하층은 영업부와 관리부가 사용하고, 출판된 책을 임시로 보관하고 밖으로 내가기 쉬운 장소이다. 아트리움 아래 넓은 부분은 작은 공연도 할 수 있는 마당이고, 직원들이 쉽게 나와 차 한 잔을 나누는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람의 스케일로 지어진 주택을 다시 고쳐 지으면서 쉽게 얻어지는 것은 집안 구석구석을 쉽게 휴먼스케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휴먼스케일을 지켜내고 더욱 익숙하고 다정한 스케일임을 쉽게 깨닫게 만드는 과장된 스케일도 집안 곳곳에 존재한다. 세 개 층이 열려있는 아트리움이 그렇고, 출입구 앞 복도의 계곡과 같은 좁고 높은 골목도 그렇다. 또 각층마다 기존 주택의 통로부분을 앞 뒤 외부로 열어주어 외부로 내부공간이 툭 트여진 부분도 작은 스케일의 집과 대조적으로 어울릴 수 있으면 하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 우리 나라 출판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반세기가 넘는 연륜의 출판사를 담으려 하였다. 집을 쓰는 사람들,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감싸안을 집으로 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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